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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잡는 영화 소개서

외국어를 읽을 줄 안다고 해도, 외국어는 외국어입니다.
자국어를 읽는 것보다는, 그만큼 에너지가 소모되는 작업이죠.
그래서 만화책은 읽더라도, 굳이 활자매체를 읽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인데요.
그 중에서 정말 재미있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책입니다.
오-켄의, 나는 이상한 영화를 보았다!!

오-켄이란 것은 저자인 오오츠키 켄지의 애칭입니다.(가운데 찍혀있는 대머리;)
기본적으론 '근육소녀대' 등의 밴드를 거쳐 현재는 '특촬'이란 밴드를 이끌고 있는 록뮤지션입니다만,
다양한 서브컬쳐류에 정통한 매니아이자, 작가이기도 합니다. (사실 밴드명만 봐도 심상치가 않지요;)

일단 그 자신이 소설가이기도 하고요.
그냥 좀 끄적이는 수준이 아니라 상당히 높은 평가들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엣세이, 평론을 기고하고 있지요.
(이 책처럼 영화 관련부터 여행기라던가, 초상현상 관련, 아이돌 대담 같은 것까지;;)

그의 존재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나 죠죠의 기묘한 모험 등의
유명작에 영향을 끼친 것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그가 일본의 대표적인 영화지인 키네마쥰보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으고
대폭 가필하여 출간된 단행본인데요. 제목 그대로 괴한 센스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다양하게 괴한 영화들을 다루고 있어요.
하나 예를 들어볼까요?
세상에는 영화 중간에 '지금부터 A 캐릭터는 B씨와 C씨가 2인 1역으로
연기하므로 그렇게 알고 보십시오' 식으로 자막을 넣고,
진짜 그렇게 해버리는 영화가 존재하더군요. 헐.
실험 영화도 아니고 일반 상업 영화에서, 진지하게.
(만든 사람 좀 나와 봐. 나랑 면담 좀 하자.)
오독의 여지가 있을까봐 한번 더 말해두자면
1인 2역이 아니라 2인 1역 영화입니다. -_-;

한 챕터에서는 그 자신이 직접 관련된 영화를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 자신의 소설인 좀비순애물 '스테이시 소녀좀비재살담(再殺談)'의 영화판 감독이
사비를 털어 광고 간판을 세운 이야기라던가,
게다가 그 광고 간판에는 영화 광고만 있는게 아니라 예전 애인에게 전하는
사적인 메세지가 담겨있었던 일이라던가(일반 관객들에겐 완전한 의미불명),
감독이 극장에서 자비로 출판한 자신에 대한 소책자를 배포한 일이라던가
(게다가 내용은 음담패설 체험담류!?).
일본판 주제가를 자신의 밴드 '특촬'이 담당했던 용가리 2001년판도 소개되어 있더군요.
대표 샘플은 시류에 따라 스파이더맨 3종신기 페이지로 한번.
책 구성은 본문 아래쪽으로, 본문에서 지나가면서 언급된 영화들의 부연이 붙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본문의 주제였던 토에이판, 77년도 미국 TV판, 영화판 사진이 찍혀있는데,
보통은 전혀 다른 영화들의 부연들이 주욱 차지하고 있지요.
그리고 중간에 본문을 압축시킨 한컷짜리 만화가 들어갑니다.

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문장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아는 영화보다는 모르는 영화가 태반이었는데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낄낄거리며 읽어나갈 수 있었어요.
이거 한권 들고 있으면 퇴근할 때의 지옥철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글을 재미있게 쓰려다보니 가끔은, 아니 종종 영화의 본질이 왜곡되는 일도 있습니다만,
별로 큰 문제는 아니에요. 이건 원래 사람 잡는 영화 소개서니까.
'사람 잡는 영화' 소개서이고, '사람 잡는 영화 소개'서이니까.
거기에 이 책의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왜곡에서 뜻 밖의 만남이 생기기도 하고요.
딴에는 이상한 영화라고 소개해 놨는데, 직접 찾아서 봤더니
꽤나 좋은 영화다 싶은 작품과 조우하게 되기도 하거든요.
저한테는 'AIKI'가 그런 영화였습니다.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의 아들인 텐간 다이스케가 찍은 영화인데
오-켄이 쓰기로는 '초능력 프로파간다' 영화라는 얘기였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그렇게까지 느껴지진 않았고 잘 만든 청춘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 소개는 언제 따로 한번 해볼까 싶네요.


B무비, 컬트 영화, 괴작, 사람 잡는 영화 등 여러 표현이 있지만
어찌 됐든간에 이런쪽의 센스를 좋아하시는 분,
게임을 할 때도 괜히 쿠소게만 찾아다니시는 분,
어찌되었건 그냥 재미있게 잘 쓴 문장을 즐기고 싶으신 분,
모두에게 상당히 추천하는 책입니다. 재미있어요. +_+

(추천해 봤자 원서라서 접근도가 제한되는 것은 아쉽습니다만 orz)



PS.
한국에서도 웹의 바다를 항해하다보면, 블로그에서라던가
종종 이런 류의 사람 잡는 영화 소개글을 접할 수 있는데 말입지요.
그런 거 모아서 한번 책으로 내봐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D

by 충격 | 2007/05/23 01:30 | 활동사진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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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임시 개장 at 2007/08/28 12:54

제목 : 괴수대결전 양가리 - 사람 잡는 영화 주제가
내가 옛날에 용가리를 상대로~ (재탕)이오공감의 디 워 관련 포스트에 들어갔다가 트랙백 타고 위의 잠본이님 포스트에 들어갔다가,다시 아래에 걸린 링크들을 잠깐 훑어보다보니 판본 관련 얘기가 나오길래...생각난 김에 한 번 적어봅니다.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용가리는 일본에도 수출했으므로 일본판이 있습니다.일본 제명은 '괴수대결전 양가리'죠. 그리고 미국판 렙틸리언과 함께, DVD로도 출시되어 있습니다.(한국판은......more

Linked at 임시 개장 : 13인의 자객 .. at 2011/10/31 00:32

... 보기엔 '이 수상내역은 좀 오바가 아니냐?' 싶을 것 같긴 합니다만) (텐간 다이스케의 'AIKI' 에 대해선 언제 한 번 따로 써봐야겠다고 적었던 것이 </a><a href="http://shougeki.egloos.com/1206718">2007년 5월인데,몇 년째 그렇게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 영화 외에 ... more

Commented by 벨제뷔트 at 2007/05/23 01:40
요거 재미있겠군요... 키들키들.

근데 저도 정신력 소모가 극심해서 만화 외의 활자 매체는 잘 안 읽는지라~ 으음 --.
Commented by 사노 at 2007/05/23 02:08
서평잡지 다빈치에 코너도 있는 사람인 듯 하기도 하고 아닌 듯 하기도 하고 이 사람의 소설 소개도 봤는데 특이하긴 하더군요. 문체가 워낙 거칠어 취향은 아니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대단타고 생각했습니다. 아, 다빈치에선 역사 코너였던가....이 사람의 영화평이라. 궁금하긴 하네요.
Commented by 충격 at 2007/05/23 11:39
벨제뷔트님/ 근데 이건 워낙 읽는 맛이 있어서 정신력 소모가 없더라고요. :D
사노님/ 다빈치 맞는 것 같습니다. 검색해 보니 웹에서도 일부 코너는 읽을 수 있는 것 같네요.
워낙에 다방면으로 여기저기 엣세이류를 기고하는 사람이라서리.
Commented by 타쿠미 at 2007/05/23 12:16
오오츠키 켄지;만화야화랑 다른 쇼프로 나온거 몇번봤는데 자기 주장 확실하고 자기 멋진맛에 살아서 괜찮던데 읽어보고 싶넹;뮤지션이라지만 음악은 들어본적이 없구나-_-;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7/05/23 21:44
77년 거미남의 일러스트는 미화가 너무 심한 것 같군요 (...저런 그림체가 아니었던 것 같은디)
Commented by 충격 at 2007/05/24 06:15
타쿠미/ 음악은 나도 별로 들어본 적이 -_-;
...용가리 주제가는 들어봤소이다
잠본이님/ 아, 저기 실린 건 애니판이 아니고 TV용 실사판이에요.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7/05/24 16:50
그렇군요. 근데 그점을 감안해도 구도 탓인지 원판보다 멋있어 보이는군요;;;
Commented by 충격 at 2007/05/24 18:54
그러게요, 구도 참 잘 잡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세상이 좋아져서 you-tube에 클립이 일부 있더군요.
보니까 아무래도 토에이판의 스파이더맨 움직임도 이쪽을 많이 참고한 것 같네요.
(스탠리 아저씨는 뭘 그리 토에이판 독특하다고 칭찬을 해댄건지 약간 의아해졌다!!?)
Commented by 세가사탄 at 2007/05/25 00:24
책 재밌어보이네요~
저런 책이 다 있다니 역시 일본은 재밌는 나라
Commented by 엿남작 at 2007/05/25 10:43
딱 제취향 같습니다 --p

허나 제 일어 실력가지곤 저거 1년은 더 걸려야 다 볼듯;;;
도쿄타워 원서는 아직도 반도 못읽은 상태네요.

원체 더듬거리다 보니 한장 넘기면 전장에 뭔 내용인지 잊어버리네용.;;
Commented by 충격 at 2007/05/25 16:25
세가사탄님/ 저 인간이 특히 평균 레벨을 크게 상회하고 있기도 합니다
엿남작님/ 앙... --b를 쓰려다 잘못 치신 것 아니신지... 엄지 손가락 아래로, 가 되어있습니다. OTL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7/05/25 22:23
스뎅리 영감님은 해먼드판을 꽤 싫어하셨다니 제대로 안보셔서 몰랐던 거겠죠.
Commented by 충격 at 2007/05/26 12:05
그래도 설마 제대로 보시긴 하셨겠죠 -_-;;;;
(연세가 좀 되셔서 그동안 잊으셨을 순 있겠...;;)
Commented by asdf at 2007/08/16 20:20
일본어를 알면 저런 것도 읽을 수 있고 좋을텐데. 아 왜 일본어 공부를 게을리 했던고.
Commented by 충격 at 2007/08/18 20:27
지금부터라도 하시면 됩니다. +_+
(...라지만 저부터 영어공부를 해야...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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