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7월 16일
전쟁과 아니메영화 -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 강연록 (반딧불의 묘)
반딧불의 묘.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논쟁적인 작품입니다.
80년대가 아닌... 불과 2년 전에도 개봉을 하려다가,
극우 논란이 어쩌고 하면서 개봉이 연기된 적이 있었죠.
글쎄요... 이 작품에 대해 극우라는 수식어를 붙이거나
군국주의를 미화한다는 식의 의견에 대해서는,
오독도 이렇게 심한 오독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다만 군국주의 비판의 요소가 있다고 해도 너무 미온적이라거나,
너무 피해자로서의 측면만이 강조되고 있다는 의견 등이
생각해 볼만 한 비판적 입장이라 볼 수 있겠죠.
양쪽으로의 타당한 해석 가능성이 있다고 해 봅시다.
그렇다면 정답은 어느 쪽일까요?
무엇을 기준으로, 어느 쪽으로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작품에서 확실한 정답을 찾을 수 없다면?
만든 사람에 대해 알아보면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사람의 평소 생각과 행동을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딱 한 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일본에는 평화헌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2차 대전 패전후 제정된 일본의 헌법 제9조로서,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할 것이며,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영구히 포기하고,
그를 위해 군대를 갖지 아니하며,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골자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익세력들을 중심으로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내부에 우익세력들만이 있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그래서 헌법 제9조의 '개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결성한 '9조의 회'란 단체가 있지요.
그리고 관련단체로서 헌법 제9조 개악을 반대하는 영화인들의 모임도 존재하고 있는데요.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바로 이 '영화인 9조의 회'의 발기인 중 한 명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실천과 행동을 통해, '반딧불의 묘'를 극우로 보시는 분들의 생각과는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니까요.
그 사실 하나만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길이 없다고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런 분들을 위해 여기서는 영화인 9조의 회 결성 당시의 집회에서
일본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모모타로의 바다독수리'의 속편인
'모모타로 바다의 신병' 상영후 이루어진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강연 내용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님의 허가를 받았음을 알립니다. ※
※ 무단전재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 바랍니다. ()안의 내용은 역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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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아니메영화
타카하타 이사오 (애니메이션 영화감독 / 결성발기인)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아마도 모두가, 헌법제9조라고 하는, 세계를 향해 내건 훌륭한 이상의 기치를 절대로 내려선 안된다고 확신하고 계신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슬퍼하고, 이라크로의 자위대 파견 철폐는 물론 그 어떠한 무기도 내보내지 않고, 평화헌법을 유지하며, 그 정신에 의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제협력과 국제공헌을 발전시키기를 소망하고 계신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평화로의 절실한 바람을 담은 영화 제작을 착실히 실행해 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한 모든 분들, 많은 선배님들을 제쳐두고 이렇게 중대한 집회에서 강연을 하게 되다니, 실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만, 오늘 상영된 것이 만화영화이기 때문에 전쟁과 아니메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조금 얘기해 보겠습니다.
전쟁 당시의 아니메
애니메이션 영화는, 단순하게, 동물 등을 이용해서 우화를 심어넣을 수가 있습니다.
1957년, 막 생겨났을 당시의 토에이동화에서는 '하누만의 새로운 모험'이라고 하는, 타이 주재 미국대사관으로부터 발주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같은 미국대사관으로부터의 발주로 '곰과 어린이들'이라고 하는 노골적인 반공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원화를 그릴 수 밖에 없었던 오오츠카 야스오씨에 의하면 '소련을 상징하는 거대한 곰이 중국이라고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머리모양을 한 소녀와, 타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그리고 미얀마를 나타내는 민족의상을 입은 아이들을 차례차례 잡아먹어버린다'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일본의 만화영화도 미국의 '차가운 전쟁'에 협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서는 그런 식으로 동물을 이용한 노골적 선전 만화영화를, 주변국에 보이기 위한 용도로 제작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 경위와 작품 일부가, 12년 전이었나요, NHK에서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충분한 성과를 올리기 전에 패전을 맞이하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고 기억합니다.
프랑스는 어떤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곧 바로 져버렸기 때문에 이후 독일 점령하에 놓였습니다. 실사영화 쪽에서는 망명하지 않고 프랑스에 남은 영화인들이 '밤의 방문객 (원제:LES VISITEURS DU SOIR)' '인생유전(LES ENFANTS DU PARADIS)' 등, 설령 자유를 빼앗기더라도 정신의 자유만은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의지와 긍지를 내보여, 점령하의 프랑스인들을 격려했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타베르니에 감독의 '안전한 행동(Laissez-Passer)'에는 당시의 올곧았던 영화인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역주: 밤의 방문객은 1942년작, 인생유전은 1945년작, 안전한 행동은 2002년작.)
아니메는 어땠을까요? 사실은 미국제의 카툰이 들어오지 않게 되면서, 오히려 국산의 길이 개척되었다는 재미있는 사실이 존재합니다. 폴 그리모는 전후에 명작 '작은 병사'와 '사팔뜨기 폭군', 현재의 '왕과 새'죠(※), 혹은 전쟁과 무기와 신식민지주의를 고발하는 짧은 단편을 만든, 프랑스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작가입니다만, 당시의 점령시대에 단편 애니메이션을 여러편 만들면서, 그 동안에 실력을 키워갔습니다. 물론, 내용은 전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역주: '왕과 새'(1980)는 '사팔뜨기 폭군'(1953)의 개작이다.)
미국에서는 세계대전 당시, 디즈니도 상당히 노골적으로 일본을 바보 취급하는 단편을 몇 개인가 만들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물론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오로지 군무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을 위해서 '프라이빗 스너프(Private Snafu)'라고 하는 웃기는 애니메이션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워너와 MGM의 스태프들을 통해 상당 편수가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스너프란 이름의 능력 없는 병사가 주인공으로서, 실수만 거듭 한다는 내용인데 '재미있으면서도 도움이 되는 애니메이션'이란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걸 보고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것이었겠죠. 척 죤스 등 미국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크리에이터가 관련되어 있었고, 지금 봐도 꽤나 재미있을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 유명한 프랭크 카프라가 대령으로서, 군의 영화부 책임자였습니다. 미국은 이런 데에서도 여유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일본. 일본은 대전 당시, 저 유명한 오오후지상의 오오후지 노부로씨에 의한 것을 포함하여, 몇 개인가의 전쟁협력 아니메가 만들어졌습니다. 전후 미군에 몰수되었는지 자주적으로 폐기했는지, 어쨌든 지금 그것들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오오후지상: '마이니치영화콩쿨'에서 주어지는 애니메이션 분야에 관련된 수상 부문.
일본 애니메이션의 선구자인 오오후지 노부로를 기리며, 1962년에 창설되었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제작영역에서 그 해에 특히 성과를 올렸다고 생각되는 개인 혹은 그룹에게 주어진다.
1989년도부터 애니메이션영화상이 별도로 신설되어 오오후지상과는 구분되고 있다.)
모모타로 바다의 신병
오늘 보신 '모모타로 바다의 신병'도 미국에 몰수되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만 쇼치쿠의 창고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고, 필름센터에 안치가 된 필름입니다. 테즈카 오사무씨가 어린 시절에 보고 감격하여, 아니메를 목표로 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 점에서도 명성이 높은 작품입니다. 이것은 1942년에 만들어진 '모모타로의 바다독수리'의 속편으로서, 양쪽 다 해군성이 발주한 것입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보신 그대로입니다. 전의고양영화 용도였습니다만, 완성된 것이 1945년이어서, 토쿄대공습을 필두로 각지가 공습에 처해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을 북돋기는 커녕 제대로 공개조차 되지 못한 채 끝나버린 것이었죠.
높은 기술수준
내용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습니다만, 이 작품의 높은 기술수준에 놀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은 애니메이터 대부분이 이미 징병되어 있었기 때문에, 극히 단시간에 양성한 신인들이 이 작품의 작화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감독은 세오 미츠요씨입니다만, 신인을 육성한 것은 그림자 놀이 씬의 연출과 작화를 담당한 마사오카 켄조씨입니다. 마사오카씨는 1942년에 명작 '거미와 튤립'을 만드신 분으로, '일본만화영화의 아버지'라 불리고 있습니다. 저는 한 번 만나뵌 적이 있는데, 마음속으로부터 존경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기술의 이론면에서도, 그것을 구체화하는 방법론에서도, 마사오카씨는 실로 번듯한 것을 이미 확립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순식간에 신인양성도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모타로 바다의 신병'은 일본 최초의 장편만화영화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달성시킨 기술과 경험은, 전후의 북새통도 있었고 해서, 우리들에게 직접적으로 계승되지는 못 했습니다. 혹시 전쟁이 없었다면,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는 어떤 식으로 발전해 갔을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젊은이들은 어떻게 보았는가
1984년, 이것이 필름센터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었을 때, 다수의 젊은 아니메팬이 달려왔습니다. 그 때문에 상영회수를 늘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개그가 나올 때는 순수하게 웃어가면서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쩌면, 이 청년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아닐까, 하고 소름이 끼쳐서, 나중에 한 잡지를 통해 그러한 청년들과 이야기를 해 보는 기회를 제공받았습니다. 역시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무대가 인도네시아라는 것도,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대동아공영권의 실태도 모르더군요. 그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물들이 동물이 아니고 아시아의 어딘가의 사람들이란 것은 알았으면서도, 일본군을 위해 강제노동을 당하고, 일본어를 가르치고 하는 씬도 뮤지컬로 '밝고 즐겁게' 묘사하고 있으니까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스스로도 즐거웠다, 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인도네시아 사람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건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정경과 병사들의 따뜻한 마음이 묘사되는 것을 보고 '이런 시대였기에 더욱, 자신이 그리고 싶은 평화 같은 것을 묘사하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떤 대학생은 '만든 사람들의 그런 마음이 전해져 왔기에 비로소, 이 영화를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라던가 일본의 침략이라던가 하는 것을, 저는 거의 느끼지 못 한 거라 생각합니다' 라고 말 했습니다. 여러모로 이야기를 나누고 사정을 좀 알게 된 다음에는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면, 괴로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식의 의견이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그 전쟁에 당시의 사람들은 찬성하지 않았다, 강제되어서 억지로, 본심은 아니지만 전쟁에 협력한 것이다, 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의 청년들이 지금은 벌써 40대가 되어있을 겁니다.
반전 아니메에 대해
그런데, 전쟁 반대와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어린이들이 갖도록 하자, 라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아니메는 상당 편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의 큰 특징의 한 가지입니다. 여기에도 그런 것을 만드신 분이 있을지 모르고, 저의 '반딧불의 묘' 같은 것도 그러한 것들 중 1편으로 보여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중 많은 것들은, 전쟁 말기의 비참한 체험을 묘사하면서, 이제 그렇게 참담한 생각과 경험은 겪고 싶지 않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라는 형태로 반전의 기분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일정 정도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반딧불의 묘'를 만들기 전에도, 지금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반전이란 걸 얘기한다면, 이러한 영화는 진정한 '반전'으로서는 부족하다고 할까, 그다지 유효하지는 못 하다고 계속해서 생각해 왔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지는 과거를 돌아볼 것 까지도 없이, 현재 매일매일의 TV뉴스로도 목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전쟁도, 시작할 때에는 비참해 질 거라고 각오하고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 있어서의 베트남 전쟁처럼. 이번 이라크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 모두가 고민해야만 하는 최대의 문제는, 전쟁을 시작할 때까지의 과정이 아닐까요. 전쟁을 하지 않고 원만해질 수 있도록 국제협력을 발전시키고, 국제간의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지혜와 노력을 지속할 것, 그것에 전력을 다 할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반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이겼으면 좋겠다
얘기가 빗나가는 것 같습니다만, 지금은 '울려주는' 영화만이 대히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슬퍼서 우는 것도, 불쌍해서 우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감동해서 울고 싶어합니다. '울었다'라는 것이 영화에 대한 칭찬입니다. 그러니까, 만드는 측은 주인공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그것만을 관객이 바라도록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이미 성공입니다. 실력 있는 크리에이터는 리얼리티가 있는 높은 수준의 영상의 힘으로, 교묘하게 관객을 휘두르고는, 어째서 그렇게 잘 되어가는 건지 알지도 못한 채, 능숙하게 이야기를 굴려서 대단원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렇게 하면, 모두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울어줍니다. 그저 주인공을 응원하고, 기분 좋게 감동하고 싶어하니까요. 그렇게 잘 되어갈 리가 없어, 라는 것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눈 뜬 지성과 이성은 그 '감동' 앞에서 무력합니다.
만약 일본이 테러 전쟁 같은 것을 포함하여, 전쟁에 휩쓸린다면, 60년 전의 대전 당시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이라고 하는 주인공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밖에는 바라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입니다. 그리고 기분 좋게 감동하려고,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을 응원하는 것처럼, 일본이 세계 속에서 승리하기를, 대국으로서 행동하기를, 모두가 응원하는 것은 아닐까요.
바로 지금, 전쟁말기의 비참함이 아니라, 그 전쟁의 개전 당시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까지 회의적이었던 사람들도, 대다수의 지식인도, 전쟁이 시작되어 버린 이상 이제는 일본이 이기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라며 빠짐없이 위정자에게 협력하기 시작한 사실을 말입니다. 유명인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이 지성과 이성을 잠재워 버리고, 일본이 이겼으면 좋겠다고 밖에는 바라지 않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거짓 정보를 제공받고, 속고 있었던 것이다, 혹은 반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라고 변명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봐야 엎질러진 물이고, 초기에 이기고 있었을 때의 정보는 대체로 맞는 것이었을 겁니다. 저는 국민학교 4학년 때 공습을 겪었고, 옥음방송(※)을 들었습니다. 개전 당시엔 어렸으니까, 잘 알고 있다고는 말하진 않겠습니다만, 적어도 태평양 전쟁을 시작할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부터 전쟁을 지지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때까지의 일중전쟁도 그렇습니다. 그 당시의 전승기행렬, 제등행렬은 결코 강제되었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니고, 모두가 기뻐하며 참가한 것입니다. 요컨대 대대적으로 응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취한 것처럼 감동한 것입니다.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을 국민이 공유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에 반대한 소수의 사람들은, 이미 감옥에 쳐넣어져 있었습니다.
(옥음방송: 천황의 육성으로 전쟁의 종결을 알린 라디오 방송. 이 날 일본국민들은, 처음으로 천황의 육성을 들었다.)
브레이크가 걸리질 않아
하지만 전쟁은 영화가 아니니까, 잘 될지 안될지는 그것을 응원하는 소망의 강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교묘한 크리에이터와는 달리, 무능한 위정자는 잘 되게 하기는 커녕 질질 끌면서 패전을 거듭하고, 그만 두지도 못하고, 결국 국민을 옥쇄, 원폭, 공습, 피난, 억류와 같은 비참한 현실에 직면시켰습니다.
그만 두지도 못하고, 질질. 브레이크를 걸 수가 없었던 겁니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방향전환을 시도했을 지도 모를 소수파는 감옥 안이었습니다. 야마토의 혼, 쏘아버리라, 일억의 불꽃이다, 본토결전, 신풍(카미가제)이 분다(※). 지금 돌아보면 우스꽝스럽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그저 일본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모두의 맘 속에 있던 단순한 바람이 위정자의 그러한 비이성적인 헛소리를 지탱하고 있던 것입니다. '비국민'(※)이라는 것도, 특고(※)만이 사용하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니가 그러고도 일본인이냐. 일본이 져도 좋다는 거냐. 일본이 이기기를 바라지 않는 거냐. 비겁자!'라는 의미로, 약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비국민'이라고 단정짓곤 했던 것입니다. '져도 좋다는 거냐'라고 추궁받고서 '져도 좋다, 아니, 빨리 항복하는 편이 좋아' 라고 용기를 내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야마토의 혼~신풍이 분다: 대전당시의 선전표어들)
(비국민: 2차 대전 당시 전쟁에 협력하지 않는 자, 정치를 비판하는 자 등을 비난조로 칭하던 용어.)
(특고: 특별고등경찰. 2차 대전 당시 반체제 사상의 활동을 탄압한 비밀경찰.)
그 전쟁 당시와 앞으로의 일, 어디가 다른 걸까요. 물론 크게 다릅니다. 하지만 지금, 모두가 이성을 잠재우고, 영화를 보면서 잘 되기만을 바라고 그것이 충족되면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상태는 전쟁 당시의 전반과 매우 흡사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겁니다. 그리고 현실은 영화와 다르기에, 그만두지도 못하고, 질질. 깊은 수렁에 빠져버릴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것은 아닐까요. 8월의 올림픽 야구에서 일본대표의 패배가 거의 결정적이 되었을 때, 모두의 소망을 대표하여 아나운서가 절규했습니다. '여기서 절대로 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절규 직후, 패배가 결정되었습니다. 이러한 아나운스도 굉장히 일본적이어서, 모든 외국도 다 마찬가지, 인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한심한 우리들에게 브레이크를 걸 방도는 있는 걸까요. 지성과 이성을 잠재우지 않고 버틸 방법은 있는 걸까요.
헌법 제9조야말로 브레이크
그것을 위한 근본이념이, 헌법 제9조인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드높게 내건 이상주의의 기치. 그것과 이제까지의 일본이 걸어온 현실과의 갭은 분명히 굉장히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9조가 있기에 비로소, 전후의 일본은 미국에 종속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고, 또한 과거에 침략한 아시아의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과도한 긴장이 생겨나지는 않았다, 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재인식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상극이 있기에 비로소 많은 사람들의 지성은 계속해서 눈 뜨고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질질 끌려가지 않기 위한 커다란 브레이크가 되어 온 것은 아닐까요. 이상과 현실의 상극을 이상을 버림으로써 해결하려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브레이크를 거는 능력은, 지금 그렇게도 지독하게 최저라고 하는 미국보다도, 일본 국민은 더욱 더 낮은 건 아닐까요. 민주주의, 의견의 차이를 허용하는 도량, 혹은 타인과 다른 행동을 하는 인간을 인정하는 도량, 그 어느 것을 보더라도, 역사적으로 이분자를 배제하는 전원일치주의를 취해 온 일본 쪽이 미국보다 한참 더 열등한 것은 아닐까요. 집단주의를 취해 온 우리들은 유감이지만, 브레이크가 걸리질 않아 질질 끌려가기 쉬운 체질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젊은 사람들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만, 아무래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9조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 가능성이 높을지, 그것을, 헌법과 현실과의 정합성을 추구하기 위해 현실쪽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반드시 다시 생각해 봐 주길 바라는 마음에, 미야자와 키이치 전수상하고 비슷한 정도로, 꽤나 미적지근한 의견을 펼쳐봤습니다.
어쨌든간에, 지금이야말로 헌법 제9조를 드높이 내걸고, 그 정신에 입각한 외교와 진정한 국제공헌, 국제협력을 진전시켜야 할 때가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박수)
여기에 더해 제가 보낸 전재 허가 문의 메일에 대해,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님이 직접 전해오신 코멘트를 추가합니다.
『』안의 내용을 보충설명으로 달아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만,
앞 뒤의 맥락까지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뉘앙스가 전달될 것 같아, 전문을 소개합니다.
저도 일한우호를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번역 전재해 주시는 것을 거절할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 일본인 대상의 이야기에, 그렇게 해주실 만큼의 내용이 있는지 어떤지, 입니다. 특히 이런 이야기를 할 경우, 청중이 일본인 뿐일 경우라도 『전쟁말기의 자국민의 비참한 체험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적인 원인, 즉 그 이전에 타국으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와, 그것들이 타국민에게 안겨준 참상에 대해 확실하게 전달하고, 생각하게 할 수 있어야만이 비로소 <반전>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한 편의 영화로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자국의 타국으로의 침략을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우며,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굉장히 힘들다. 그렇기에 진정한 <반전>은 영화에서보다, 교육 등 보다 이성적인 방법으로 끊임 없이 실천해야만 할 것이다』라고 말해 왔는데, 그것이 빠져 있습니다. 혹시 가능하다면, 그 부분을 마지막에 『보충설명』으로서 써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문의메일 보내면서 이런 것까지 기대한 것은 전혀 아니었는데 말이죠.
이렇게 직접 코멘트를 보내주셨습니다.
맥락상 한국인에게 보내는 메세지, 정도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을 듯 하네요.
무슨 지면 매체인 것도 아니고... 별 볼 일 없는 개인 취미블로그일 뿐인데,
별도로 이렇게 정중한 코멘트를 보내주시니 송구스럽네요.
전재 허가와 코멘트 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자, 이제 번역 소개는 끝입니다.
설마 이걸 읽고도 군국주의 미화 운운하실 분은 없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 정도의 비판은 있을 수 있겠죠.
영화에 군국주의 비판적인 메시지가 있다고 해도 적극적이지 않고 너무 미온적이다,
일반 대중의 평균치에서 모두가 그것을 제대로 캐치해 내리라곤 기대할 수 없다,
영화를 본 일본인들 중 다수는 그저 자신들의 피해자로서의 측면만을 강하게 기억할 것이다,
같은 비판 말입니다. 결과론적인 측면이고, 사실 어느 정도 그런 측면은 있습니다.
당장 한국에서의 부정적 의견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겠죠.
물론 이 경우는 피해자로서의 과다한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이 부분은 타카하타 감독 역시,
한국인의 입장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며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언급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요, 작품만 보자면 그런 부분에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것을 감독에게까지 전가시켜서 감독의 사상이 의심스럽다느니
하는 류의 비판은 이제 근절되어야 할 것입니다.
타카하타 감독의 진정성은 위 글을 통해 충분히 인지가 되시리라 생각합니다.
연출 면에서 이런 식의 오해의 여지가 있을 것을 알면서도 타카하타 감독은 그렇게 연출했습니다.
이것은 타카하타 감독이 기본적으로 철저하게 리얼리즘 성향의 연출가이며,
주관적인 감정보다는 객관적인 이성을 중시하는 계산적인 연출가이기 때문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테면, 한국인이 가장 쉽게 착각을 일으키는 지점은 바로 이런 겁니다.
극중 인물이 군국주의에 동조하는 듯한 언동을 보이고,
자신들이 억울한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할 때,
거기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그 행동의 주체를 감독으로 인식하는 거죠.
'이거 감독, 사상에 문제 있는 거 아냐?' 라고 해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큰 잘못이죠.
타카하타 감독에게 있어서 극중인물은 감정이입 = 동화의 대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관찰의 대상이고 타자입니다.
즉,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며 불편함을 느낄 때,
감독의 시선은 극중인물이 아니라 우리 옆에 서 있는 것이고,
같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겁니다.
이걸 착각해 버리면 완전히 정반대의 의미가 되어버리는 거죠.
이 작품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들까지도 종종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그들을 피해자로서만 그리고 있다는 시각입니다.
나쁜 것은 수뇌부의 군국주의자들이고,
일본 국민 역시 일반인들은 피해자에 불과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위 글을 읽어보면 그것 역시 약간의 오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
타카하타 감독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피해자'가 아니라,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방조하고, 나아가 협력한 가해동조자'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시선을 좁혀서 주인공 남매만을 보아도,
그들이 단순히 피해자로서만 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남매를 단순히 피해자로만 생각하고 눈물 흘리는 것은 스스로 감정이입의 함정에 빠져버리는 꼴이죠.
하지만 그건 타카하타 감독의 온전한 스타일은 아닙니다.
냉철한 이성으로 곰곰히 뜯어보면 이 남매의 죽음은 '자업자득'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남매는 해군 장교의 자식으로서 전쟁이 말기로 치닫기 전까지는
상당히 호사스럽게 생활해 왔음을 알 수 있고,
친척집에 와서까지 상당히 자기들 기준으로 응석을 부리다가,
성에 안차자 뛰쳐나가서는 괜한 죽음을 맞아버리죠.
이에 대해 감독 역시 인터뷰에서 여러 번
'남매의 죽음은 세이타에게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작품을 해석하는 여러 시각들 중에는
앞 뒤 상황을 제대로 재지 못 하고 자기 고집만 부리다가
여동생을 죽게 만들고, 자신도 죽은 세이타가,
상황 판단을 못 하고 자신들만의 망상에 빠져 헛짓거리하다가 자멸한
일본군국주의 그 자체를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을 정도니까요.
극중 세이타가 아버지 흉내를 내는 장면은 그런 맥락에서 읽는 것이 가장 합당할 것입니다.
비단 이 작품과 타카하타 감독뿐 아니라...
피해자로서의 선입견이 너무 앞서간 나머지 섣부르게 판단하고,
비난부터 하는 경향이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같은 분들은 그런 식으로 적대할 계층이 아니라,
한국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자신들의 과오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고, 올바른 앞 길을 추구하는,
눈 뜬 지성과 이성을 지닌 지식인 계층이라는 것을요.
그들을 대하는 한국인들에게도,
눈 뜬 지성과 이성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일.본.이라는 두 글자만 들어가면 이성과 지성을 잠재워 버리고
뜨거운 가슴으로만 행동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런 식으로는, 전진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이성과 지성의 눈을 뜨고, 보다 냉철하게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특히 타카하타 감독이 일본인들의 집단주의적인 성향을 바라보며 염려하는 부분은,
한국인들의 민족주의적, 내셔널리즘적인 성향에도 그대로 대입 가능한 심려라고 봅니다.
예를 들자면,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라 말씀들 하시겠지만,
2002, 2006 월드컵에 열광하며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개인적으로 불편했던 심정들이 위의 저 글과 별반 다르지가 않네요.
어쨌든 일본이건 한국이건 간에...
그러한 사회적인 감정의 덩어리가 나쁜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도록,
각자 이성과 지성을 잠재우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이만, 맺습니다.
※ 본 포스트는 링크를 장려합니다. ※
※ 한국의 인터넷 각지에서 간간히 벌어지는 관련 논쟁의 종지부용으로 사용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 다만 이 강연록은 본블로그의 주소를 걸고 전재 허가를 받은 것이므로 ※
※ 내용을 직접 퍼가시는 것은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
※ 링크는 굳이 저에게 신고를 하시거나 할 필요는 없습니다. ※
반딧불의 묘 (2disc)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대원DVD
# by 충격 | 2007/07/16 21:59 | 활동화상 | 트랙백(2) | 핑백(4) | 덧글(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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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잘못된 사실에 근거하는 논쟁이 계속 될거라는 거... 그런 의미에서 보다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이오공감에 추천하겠습니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 글로 인해서 오랜시간동안 끌어오던 논쟁이 끝이 나면 좋겠네요
제 주위에도 만딧불의 묘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꼭 읽어주고픈 글입니다 ^^
'전쟁은 참혹한 것이다'라는 교훈을 결론적으로 얻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 글을 링크한 뒤에 포스팅 하고 싶군요.
전쟁을 일으켰던 아니던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잘못된 선택이 전쟁의 피해자들 하고는 상관이 없거든요. 전쟁속에서 버려지고 죽어가는 아이들이 전쟁을 선동한건 아니니까요.
감독분이 스스로 언급했듯이 배경지식을 가지지 않고서는 영상물을 읽기보다는 느끼게 되는 일본인 관객들의 입장에서 남매의 죽음은 어려운 시대에 대한 한탄의 눈물을 짜내기 위한 것 이상이 될 수 있을까요? 죽음을 동정하기보다는 좋았던 그 시절에의 집착이 낳은 당연한 결과라고 냉소를 보내며 더 나아가 자신도 똑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음을 관조할 수 있을까요? 후자 쪽이 지극히 어려워 보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극우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반전작품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명의 원작이라면 반전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뭐 라임색 전기담, 감벽의 함대, 호코리 등의 자위성 작품들은 꾸준히 만들어지는 반면에 일본의 자기인식을 기반으로 한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을 고려하면 감독 분께는 감투상이라도 드려야겠지요. 중국 전선에 참전했던 노병들의 증언을 모아 중국에서의 학살사실을 알리고자 한 이에게 살해협박전화을 하거나 유족회 차원에서 비난과 정정요구를 하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나라니까요. 일본에서의 극우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결코 일부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나 혼자만 전쟁의 참혹함을 그린다는 걸 느끼는 건가.' 싶을 정도로 다들 부정적인 시각들이 많았는데 이런 좋은 글을 읽게 되어서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십 수년 전부터 이 작품을 보고 가졌던 의문 - 왜 이 작품이 군국주의 찬양이라고 몰리는 걸까? - 에 대한 나름대로 해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한국인 입장에선 좀 더 과감하고 직설적 화법의 작품이었으면 그런 오해의 여지가 없었겠지만 일본에선 그 정도가 나름의 한계겠죠.
관련 포스팅 트랙백합니다.
반딧불의 묘를 지금에 와서 찾아볼 만한 사람은
이 글도 어디서든지 접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겠구요.
(반딧불의 묘를 들어) "도쿄 공습을 행한 미국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애니메이션이다." 바로 지지난주에 한 일본인 선생님(50대~60대 추정)께 들은 말입니다. 크리에이터의 손을 떠난 작품은 각 청중들에 의해 다르게 해석됩니다. 대부분의 청중들은 오직 작품만을 보고 해석을 합니다. 어쩔 수 없는 딜레마라고 할까요, 텍스트의 비극이라고 할까요.
벨제뷔트님> 가급적 널리 알리도록 나름 노리고 쓴 것이므로 물론 폐가 되지 않습니다.
안 올려주셨으면 PS 추가해서 누가 좀 올려달라고 하려고 했어요(......)
니트님>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Ratatosk님> ^^;;
세레스님> 적어도 감독님 본인에 대한 인신공격은 사라져야겠죠.
아무로님> 공지에도 적어놨지만 여기는 이오콜로세움 엔트리 자유입니다.
글래디에이터가 되겠습니다(......)
루크님> 전쟁은 대략 좋지 않지요.
카린트세이님> 타카하타 감독 고유의 특색이니까요.
도형이_베리엔젤님> 감독의 시선은 한 발 더 나아가, 저항하지 않고 그들을 지지한
일반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 중 '아이들'에 대해선 또 애매한 면이 있죠.
사이암님> 한국인이 보기에 '일본인의 시선으로만 그렸을 것'이라는 선입견도 강하게 작용했겠죠.
타쿠미> 그런 사람들은 답이 없다...
들러갑니다님> 위 글에서도 그런 생각들의 편린이 보여지고 있지만
타카하타 감독 스스로 '반딧불의 묘'는 반전영화는 아니다, 라고 매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반전'을 위한 영화로서는 한참 부족하다는 겸손이겠죠.
그렇기에 한 편의 영화가 아닌, 현실사회에서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THE쿠마◆님> 그래도 처음부터 제대로 받아들이신 분들도 상당히 많이 계실 겁니다. ^^;;
ZAKURER™님> 한국인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만한
좀 더 과감하고 직설적 화법의 작품으로는,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맨발의 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피폭체험자인 원작자가 일부 사재까지 털어넣어서 제작했다더군요.
(원작 만화쪽은 한국어판도 출간되어 있습니다.)
스칼렛님> 원작은 좀 그렇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읽어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트랙백 잘 읽었고요. 제가 하고픈 얘기와 거의 같은 논조라고 할 수 있겠네요. ^ ^
비공개님> 눈 뜬 지성과 이성으로,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
laystall님> 강연록 원문이 web에 게재된 지도 2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잘 알려져 있질 않고,
논쟁하는 사람들은 계속 논쟁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 좀 OTL 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제절초님> 자버리진 않았는데 저도 본 지가 오래 되서 좀 가물가물하기도 하네요.
조만간에 그 동안 미루고 있던 DVD나 구입해서 한 번 봐야겠어요.
아유무님> 내용상 사진은 그다지 필요가... 마지막에 저 작은 것 하나도 감상용으로 걸어놓은
사진은 아니고... 리뷰 등록 겸 DVD 구입하실 분 계시면 구입하시라고 걸어놓은 ttb 링크입니다;;;
milln님> 어리석은 행동이었죠.
카발리님> 그렇습니다.
익명의제보자님> 2년 넘도록 거의 알려지질 않는 것 같아서,
이번에 한 번 허가를 받아 전재해 보았습니다.
pilgrim님> 의견이 분분한 한국에 비해 사실 미국에선 호평일색에 가깝고 인기도 많으니,
어차피 저 분이 보여주지 않으셔도 볼 사람들은 다 봤을 겁니다. -_-;
그리고 해당 작품 자체는 감독이 해명을 해야 할 정도로 그러한 작품이였고요.
이걸 가지고 "한국사람 특유의 감정적..."운운은 오히려 "한국지식인 특유의 자학하기"라고 보여집니다만.
(그리고 작품은 일단 작품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지 감독의 해석이나 이런 것까지 찾아보고 비판해야 할 의무는 관객 누구에게도 없고 누구도 이를 강요할 수 없는 겁니다.
공개 당초부터 지겹도록 나온 논리 아닌 논리입니다.
간단한 검색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므로 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오옹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반딧불의 묘를 강하게 비판했다는 것도 한국에서
자주 나오는 얘기인데, 이것도 한국 인터넷에서 곧잘 보이는 나쁜 습관이죠.
본래 어디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고, 어떤 내용이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출처 표기도 하지 않고,
어디서 다른 사람이 하는 얘기를 들은 것만 가지고 계속 잘못된 정보가 확대재생산되고 있습니다.
그 얘기는 어떤 얘기인고 하면 이런 얘기입니다.
미야자키: '반딧불의 묘'에 대해서는 강렬한 비판이 있습니다. 그 작품은 거짓말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유령은 죽었을 때의 모습으로 출현하리라 생각하니까, 삐쩍 말라서 배가 고픈 상태로 나와야죠. 그리고, 순양함 함장의 자식은 절대로 굶어죽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쟁의 본질을 속이는 거죠. 노사카 아키유키가 굶어 죽지 않았듯이, 절대로 굶어죽지 않습니다. 해군 장교라는 것은 동료들이 서로간에 확실하게 서로 도와서 구제합니다. ……그건 타카하타 이사오가 알고 있어도, 노사카 아키유키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만.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형태로 발현되는 것이라 저는 생각하는데요. 그러니까, 총알에 맞아서 죽기도 합니다만, 결국 죽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죽는 거예요. / 순양함 함장의 자식은 죽지 않아요, 그걸 저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일본에 있어서의 전쟁의 구체적인 부분을 애매하게 한 채로, 그 거대한 잘못의 시기를 전부 다 반성하자는 식으로는, 전쟁에 대한 리얼리즘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해요.
('나우시카 해설 유토피아의 임계' 마도샤 간행 이나바 신이치로 저 215p-216p)
이걸 가지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반딧불의 묘'가 피해자인 척 한다며 비판했다고들 하는데요.
전혀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비판한 건 그냥 부분 묘사의 한 부분이
현실과 다르다며, 전쟁의 본질을 속이는 것이라 했을 뿐이죠.
그러니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러한 관점으로 봤을 때, 타카하타 감독은 전쟁의 본질을
속여가면서까지 오히려 자국의 거대한 잘못의 시기를 전부 다 반성하자고 하고 있는 게 되는 거죠.
타카하타 감독으로서는 자국의 과오를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반전의 메시지성을 보다 강화할 수 있는 쪽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미야자키가 반딧불의 묘를 비판했다더라' 할 때의 맥락과는 완전히 정반대인 얘기죠.
'비판이 있다' '거짓말이라 생각한다' 이 두 가지 발언에서
'미야자키가 반딧불의 묘가 피해자인 척 한다며 비판했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거의 환빠들이 소설 쓰는 것과 비슷한 레벨이라고 봅니다.
또한 미야자키 감독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일반론적인 면에서일 뿐이고,
전쟁 말기의 혼란 상태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얘기라는 걸 기준으로 놓고 생각할 때,
거의 불가능한 아사를 해 버림으로써, 세이타의 어리석음(군국주의 체제의 어리석음)이
한층 더 최고조로 강조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두 사람이 그렇게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이였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공고한 파트너쉽을 유지할 수 있었을 리가 없겠죠.
말씀하신 내용 알고 있는 사실이고요 무슨 비판을 하면 사이 나빠지고 싸워서 헤어지는 그런 비판만 있습니까?
왠지 충격님도 논리가 상당히 비약하고 있군요.
논리 비약이 아니라 애당초 하이텔 애니동이나 나우에서 나온 이야기는 시작이 저랬습니다.
말씀하신 하야오의 말도 당시 하이텔 애니동에서 최초로 번역한 것으로 알고 있고요. (어느 분이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동일 소재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만 자신과 반대되는 - 그리 반대라곤 보지 않지만 - 의견에 대해 "모르면 가만 있어라."식의 대응... 대단히 저열하다고 봅니다.
글 중에 표현된 것처럼 전쟁으로 황폐화된 현실은 누구에게나 비참하다는 것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타국민보다는 오히려 자국민을 쉽게 보여줄 수 있었다 생각합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많이 울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뚜렷한 명제를 가슴속에 심어준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대단한 가치가 있다 생각합니다. 일본이 불쌍하다는 게 아니구요...
좋은 글 진심으로 잘 읽었습니다.
다만 저런 영화가 "일본"에서 "일본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게 문제일 뿐입니다.
독일처럼 깨끗하게 전후처리를 한 나라에서 저런 영화가 나왔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극우 일변도에 왜곡이 만연한 일본에서 저런 영화가 나오는건 매우 불쾌할 수 밖에 없지요..
영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일본 그 근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슬프지만 어떤 말을 해도 일본인 이외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불쾌해질 수 밖에 없는 영화지요...;;
- 모르면 가만 있어라, 가 아니라 한국web에 잘못 알려지고 퍼져있는 속설을 그대로
말씀하시는 걸로 판단되었기에, 말 나온 김에 잘못된 속설을 정정하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잘못 알고 계신 게 아니라 저 원문을 보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거라면... 더 난감하군요.
저걸 어떻게 읽으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지 저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환빠 언급은 오옹님께가 아니라 저런 말을 처음 만들어내서
처음 퍼뜨린 사람들의 레벨을 얘기한 것이었습니다만..
본인께서도 원문을 읽고서 같은 생각을 하신 거라니... 더 이상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 하이텔 애니동이나 나우에서 나온 이야기의 시작 몇 가지가
모든 사람의 감상을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시작이 그랬다고 쳐도, 현재 만연해 있는 그 의견들이 없는 게 되는 것도 아니고요.
나대로님>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요.
(부모씨 등 일부 전쟁광들은... 휴우...)
아프란시샤아님> 자국의 과오에 비판적인 이야기인 이상은
일본인이 만들었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해석에 있어서 오해의 여지가 있을 뿐이죠.
사람에 따라서, 심정적으로 불쾌할 수 있다는 것까지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에 충분히 언급은 했다고 생각합니다만...
확실히 해두자면, 이 글은 '무조건 이 영화를 오독하지 마세요!'라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 배경에는 이러이러한 사실이 있으므로 지금부터라도 바로 알고,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봤을 때의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것까진 부정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감독 본인의 진정성까지 폄하하지는 말자는 거죠.
어쩌면 일본인으로서 그런식의 표현이 그나마 중립적이라 할수도있겠지만.
이걸 지켜보는 한국인으로서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 못하였습니다.
일본 에니메이션들을 보면 다분히 그런경향이 있죠. 대략 지팡구 라던가 콕핏등이 떠오르는군요.
그리고 미와자끼역시 우파에속한 작가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작품속 내용들을 보면 2차대전당시 독일과 이탈리아의 변형된 메카닉을 볼수가있습니다.
일본문화를 바라볼때 단순히 "재미있다~"라고 바라보는것보다는 조금은 따져보는것이 좋을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팡구나 콕핏에 비견할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계속 나오네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우파라는 것 역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속설'의 대표적인 한 가지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젊은 시절 노동조합에서 격렬하게 활동했던 사람으로,
본인 스스로 사회주의자라 밝히는 반체제적좌익인사였습니다.
그의 사회주의적 성향은 초기 작품들에 등장하는 이상적 공동체들에서도 엿볼 수 있고요.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우익이라곤 볼 수 없죠. 근래에는 우익세력들의 주요조직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한 적도 있습니다.
어느 시점 이후로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세계동포주의적 사상을 드러내 보이며,
자국과 타국을 가리지 않고 편협한 내셔널리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 아, 그리고 메카닉이 나오는 건, 그냥 밀리터리 매니아라서 그렇습니다.
한국에도 밀리터리 매니아 많습니다만 그 사람들이 다 우익이거나 전쟁광인 것은 아니죠.
일본 내에선 전형적인 전공투 세대에다 정치적으로 좌파 계열(이라기보단 원시적 공산주의자)에 코스모폴리즘이나 아나키즘에 가까운 쪽으로 평가받는데 한국에선 여전히 우파군요. (대체 이게 언제적 떡밥인데...)
그 떡밥의 최후를 장식하는 흑인은 안 내보내는 인종차별주의자에 혐한이란 이야긴 안나오나 싶습니다. 물론 일본의 새역사 교과서를 "역사 왜곡 및 내쇼널리즘으로 거짓자부심을 얻으려 한다"면서 비판하면서도 한국, 중국의 내쇼널리즘에도 비판을 가하니 혐한이려나요?
우파, 또는 군국주의자로 인식되는 이유가 단지 그의 작품에 2차대전식 무기가 몇몇 등장한다는 이유 때문이라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경우 아니메/만화 작가 이전에 일본의 원조급 밀리터리 오타쿠라는 걸 간과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오해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본질은 <잡상노트>와 <붉은 돼지>에 다 들어 있죠. :-)
작품의 지나친 이상주의적, 낙관론적인 면 때문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무기 등장 = 군국주의자/우파로 매도되는 경우가 많아서 꽤 안타깝습니다.
괜히 끼어들어서 충격님껜 죄송스럽습니다.
혹시 꺼내볼까 생각중이신 분 계시다면 부디 참아주세요... orz
제 주변에도 '반딧불이의 묘'를 보고 울었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귀여운 아이들이 그렇게 비참히 죽어가다니,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죽은 아이가 더 많을 거다, 하고 말하면, 그제서야 아, 그렇지, 합니다. 애니메이션을 볼 때는 그 귀여운 주인공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가해국으로서의 일본은 잊혀지는 겁니다. 그게 무서운 거지요.
아시아에서야 일본군의 만행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유럽 등지에서는 2차 대전 때의 일본 만행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그동안 자국의 이미지 관리에 많은 신경을 써 왔습니다. 일본의 만들어진 좋은 이미지에 감화된 유럽인들이 저런 애니메이션을 본다면, 그들은 전쟁 당시의 일본과, 한국,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나라들을 똑같이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는 가해국과 피해국인데 말입니다.
일본에서 8월 15일은 일본 추석, 오봉입니다. 그런데 그 날은 또한 종전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종전기념일 쯤은 오봉에 묻힙니다. 그리고 그 며칠 전은 일본에 폭탄이 떨어진 날입니다. 이 날, 히로시마를 비롯한 원폭 피해지에서는 기념행사가 열리면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가진 초등학교 학생이 나와서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겠으며...'하고 외칩니다. 문제는 이 행사에서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만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그 폭탄이 왜 떨어진 건지, 그 배경과 전쟁이 왜 일어났으며 왜 그렇게 끝나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찰이 없습니다. 일본에 폭탄이 떨어졌다, 이것만 강조하면서 반전을 외치고 있단 말입니다. 조금 비약하자면, 강대국들끼리 2차세계대전을 일으켜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듯이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라는 식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귀엽고 어린 아이들의 죽음을 앞세운 '반딧불이의 묘'라는 애니메이션이 나왔습니다. 그게 과연 '반전'일까요? 감독은 '반전'의 메세지를 전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다고 해서 우리가 다른 건 다 제쳐두고 감독의 '순수한' 메세지만 생각해야 할까요?
일본사람들은 성탄절에 선물을 주고 받습니다. 그런데 왜 성탄절에 선물을 주고 받는건지, 그 날이 원래 어떤 날인지 예수가 누구인지조차 모릅니다. 이런 나라에서 '반딧불이의 묘' 같은 애니메이션이 나왔다고 할 때, 과연 감독은 세계 2차대전에 대해 제대로 된 고찰이나 해 보고 '반전'운운 하는건지 의심스럽습니다. 성탄절을 그저 선물 주고 받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껍데기만 생각하고 '반전' '반전' 하고 있는데, 우리만 감독의 '순수한 '뜻을 이어받아 '반전 메세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것은 '쥐가 고양이 생각'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행동이 필요함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며, 스스로 나서서 행동하고 있는 것이겠죠.
횬이님> 저걸 읽고서도 작품 자체가 놓여진 상황뿐 아니라, 감독에 대해서까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위에 타쿠미한테 답플한대로 저에겐 '답이 없다'의 영역이네요.
제 의견은 본문 그대로입니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피아식별 정도는 해야죠.
고찰이 없다는 것에 대해 비판하시면서,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고찰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고, 실제로 나서서 우익세력들과 대항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까지
적시하는 감정적인 대처만으로는 오히려 언제까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위에 미야자키 감독이 우익으로 통한다던가 하는 것도 전형적인 사례죠.
한국, 일본, 양쪽 다 눈 뜬 지성과 이성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도 과거는 아프지만 냉철하게 판단하는 지성이 필요한 때로군요. 더불어 국력이 신장될수록 빠지기 쉬운 교묘한 민족주의의 함정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보충설명까지 보내주신 다카하타 감독님도 이 민감한 정치이슈에 대해 세심하게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게 느껴지네요.
이 포스팅을 보고 한번더 볼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처음으로 봤을때가 중학교때 였고 두번째로 봤을때가 대학교에 들어가서였습니다.
뭐랄까 우리나라도 약간 이런 것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중학생무렵의 역사공부는 너무나도 한쪽으로 치우친다라고 해야할까요?
수업시간에 일본사람을 비화하는 느낌의 단어를 섞어 쓰시면서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들도 계셨지요.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반일감정을 심어진다는 느낌이 있었다고 해야할까요.
어떤것을 판단하기 힘든 나이였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들어오는 지식을 스폰지 흡수하듯이
그대로 흡수할 나이니까요 하핫.
'차가운 지식인'과는 거리가 멀죠.
저도 그때 당시에 봤을때는 이 감독이 이렇다더라라는
일방적인 정보를 가지고 엄청나게 비판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미 맞는지 틀린지도 모를 정보를 습득하고 보는 것 자체가
아니꼬운 시선으로 봐지는데 거기서 더 뭘 얻어갈수 있었겠습니까^^;;
대학수업에서도 일본의 감독들을 무슨사상을 가지고 있는 극우파 감독이다 라던가
이렇게 말씀하시는 교수님도 계십니다. 그 말을 필터링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지도 모르는
학우분들이 좀 걱정이 되기는 하는군요. 무엇보다 진실이란것은 누군가가 그렇다더라라고
말해주는것만으로 알아지는게 아니라는걸 세삼 이 포스팅을보고 생각하게되는군요.
역시 스스로 알아가는 것과 스스로 판단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 생각나는대로 마구 쓰다보니까 뭔가 이래 저래 말만 주절주절 많은것 같아서 참;;
아무튼!!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미야자키 감독의 비판에서 한가지 맞지 않는 건, 친척집에 머물고 있었다면 주인공 남매가 굶어죽을 일이 절대 없었겠지만 주인공 남매는 오빠의 아집으로 인해 가출해버리는 바람에 사회로부터 유리된 상태란 걸 간과하고 있다는 점일 겁니다.
반딧불의 묘지에 대해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를 보면 결국 리얼리즘의 한계를 느낍니다. 상화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서 보는이들의 해석을 끌어내는 게 리얼리즘인데 보여준다 해도 해석의 바탕이 되는 지식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이 영화에 대한 정성일씨의 비평이 생각나는군요.
충격님은 오히려 영화를 보고 감동 받은 자신의 감정을 방어하기 위해
감독을 지나치게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이준님님> 어허허... 뭐 한 두명도 아니니까요.
JMCakes님> 사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 주기는 합니다. 아직은 너무 이르긴 하겠죠.
Robin님> 한국 역사 교육도 편협한 부분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원래 어느 나라든 다소간은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기술하는 법이긴 하지요.
워리 버리님> 민감한 부분이니까요. 생각을 하긴 해야겠죠. - -
다비님> 정작 저는 그렇게 시원하지만은 못 하네요;
功名誰復論님> 미야자키 감독으로서는 아마 그렇게 친척집까지 어영부영 떠밀려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 이전에 장교들끼리 잘 돌봤을 거라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타카하타 감독으로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나, 그냥 원작대로 가는 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이었을테고요.
사실 한솥밥 먹는 사이인데 제작 도중에 저런 얘기 안했을 리도 없을 테고...
원작에서는 원래 장교도 아니었고 해군대위였다고 하는데 굳이 순양함 함장으로
끌어올린 것을 보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겠죠.
(2005년 드라마판에서는 또 전함 함장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나날이 출세하고 있습니다;;)
어부님> 옙, 안녕하세요. 첨 뵙습니다. ^^
fadin2u님> 1.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점들을 나열한 뒤 그것을 짐짓 자연스러운 듯
'과연 감독은 세계 2차대전에 대해 제대로 된 고찰이나 해 보고 '반전'운운 하는건지
의심스럽습니다.' 라며 크리에이터 '개인'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가는 것은,
충분히 저자의 의도를 폄하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작품 자체의 오독 가능성과 사회적인 파급효과에 대한 비판이 아닌,
감독의 실천적 행동들까지 의심한다면 저에겐 답이 없는 영역입니다.
의견을 나눠봤자 끝 없는 평행선이 펼쳐질 뿐이니까요.
(애초에 '작품 자체의 오독 가능성과 사회적인 파급효과에 대한 비판'이란 것도..
저 역시 본문에서 이미 인정하고 있는 것인데 그 부분을 저에게
열심히 반론하시는 경우도 좀 핀트가 빗나간 걸로 느껴집니다만.)
의견을 나눈다고 합의점이 도출될 만한 성질의 문제도 아니고, 각자 판단할 수 밖에요.
2. 겸손은 부적절할 수 있는 어휘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반성까진 아닌 것 같군요.
처음부터 반전 메세지 하나만을 목표로 하는 영화를 만들려고 한 것 자체가 아니니까요.
그냥 작품의 본질 자체가 원래 반전영화로서 온전하게 기능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얘기죠.
3. 실천적으로 일본내부의 우익세력에 대항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까지 싸그리 우익으로
모는 분위기가 팽배한 현상황에 대해, 그런 식으로는 (만약 일본, 일본인이라면 무조건
싫은 경우의 사람이더라도) 목적 달성에 있어서 오히려 효율적이지 못하단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 표현중에 나온 말을 단어 하나 하나 집어서 사전적으로 체크하시면 곤란하죠.
(ps.참고로 앵화초는 오우카쇼- 라고 읽습니다.)
JI님> 전 작품 자체는 썩 그렇게까지 감동적으로 보진 않았는데요. -_-;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포함해서 지브리 작품하곤 취향이 약간 안 맞습니다.
지브리 작품 중 특별하게 좋아하는 작품은 '바다가 들린다' 하나인데,
이건 또 외부감독 (모치즈키 토모미) 영입해서 만든 이례적인 작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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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것이 반전영화인지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만, 단지 저의 '반딧불의 묘'가 반전영화라고 불릴 때 위화감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전쟁의 비참함이라는 것을 그려서 제대로 반전이 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별도의 메카니즘입니다. 전쟁이 일어날 때에, 어디까지 비참한 상태가 될 것인지, 사실은 예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보통 예측을 하지 못 해요. 그러니까 전쟁이 일어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전쟁은 어째서 일어나는가, 일어날 때에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일어났는가 하는 부분을 명확하게 밝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상황만을 본다면, 비참한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 가장 영화로 만들기 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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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으로 반전을 한다는 것은 애초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인 것이고,
그렇기에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실제적인 행동까지 진실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경우들은 저에겐 답이 없는 영역입니다.
반성, 반성을 촉구하면서 막상 '반성하지 않는 우익세력들'에 대항하는 행동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또 '그래봤자 안 믿는다' 식이면 어쩌자는 건지, 저로선 답이 안 보입니다.
사실 인터뷰 번역해서 올리는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거의인데 이래저래 신경 많이 쓰셨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도 잘 아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이라는 전체를 떠나 오로지 일본인 입장에서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어 묘사하는 저 반전성 작품을 도저히 관대하게 바라볼 수 없게 하는 주된 이유가 되는 거지요. 그런 현실적 상황에 맞물린 오묘한 반감을 도외시하고서, 그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감독의 진의를 오독하여 괜찮은 작품을 백안시한다고만 단순하게 비난할 수는 없는겁니다.
엿남작님> 현실의 벽을 새삼 깨닫게 되네요.
gaya님> 작품 자체의 오독의 여지와 사회적인 파급효과에 대한 비판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본문과 리플을 통해 수 차례 밝히고 있습니다.
선입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건 이 영화가 군국주의 미화라는 데까지
나아가는 의견들에 대한 것이고, 그건 방금 스스로도 부정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 얘기 파파울프님 트랙백 리플 첫부분에 똑같이 했었고 gaya님도 읽으셨을텐데요.
그런데 그런 건 전부 무시하고 '도외시'하고서 '단순하게 비난' 이요?
글을 자신의 의견만을 기준으로, 입맛에 맞게 재단해서 읽고 계시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지금 하시는 말씀이야말로 '단순하게 비난'으로 들리는군요.
그동안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님에게 큰 오해가 있었군요.
이런 글을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PS:그리고 충격님의 일본어 실력에 놀랄 따름입니다. ㅡ_ㅡb
어떡하면 그런 일본어 실력을 가질수 있는건지...?
작품 자체로서 오독의 여지가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인의 토양이었기 때문에 이런 선을 유지했다기보다도 '일본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염출한 결과로 이런 묘사가 되었다고 하는 편이 맞을 듯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미군이 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에 대한 [동조자의 죄]를 직접 묻는 작품이라도 나오면 좀 비슷한 입장에서 생각할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아아 너무 위험하려나.... 일본이 천황과 대일본제국에 대해 비판하면 테러당하는 불관용한 나라라고 하지만, 사실 전체주의와 국가주의의 농도는 한국에 비해서는 어림도 없다고 생각됩니다. 군바리라서 더 심하게 느끼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도외시하고 비난] : 놀라운 일이지만, 정말로 그렇게 도외시하고 비난하는 사람도 꼭 나오더군요. 의견의 자유와 다양성이라는 면에서[만] 보자면 바람직한 부분도 있는 것이려나...
평론가 정성일씨의 지적대로 그간 반딧불의 묘는 저에겐 애증의 존재였기에
다시 보기가 꺼려졌으나 오늘 충격님의 글을 보고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댓글을 보던중 충격님이 간단히 언급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관련된 루머에 대한 질문입니다
충격님이 언급말아달라고 당부하셨지만
논란을 일기위한 질문이 아닌 순수한 의미의 질문인만큼 이해하시고 답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표적으로 그의 혐한 발언이 우리나라의 지나찬 민족주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만화하청과 관련된 헤프닝인지 궁금합니다
또하나 그의 만화엔 흑인이 등장하지 않아 인종차별주의자로 오해를 받고있기도한데
미야자키 감독의 흑인에 대한 시각은 어떠한 지 궁금합니다
코스모폴리타니즘, 세계동포주의에 가깝습니다.
자국을 포함하여 각국의 편협한 내셔널리즘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쪽이고요.
한국인이건 흑인이건 특별히 혐오할 이유가 없지요.
혐한 발언은 한 적도 없고, 한국의 하청 업체가 작업을 엉망으로 해놓은 것 때문에 생긴
트러블이 와전된 거죠. 그걸 계속 검증도 없이 입에서 입으로 (아니, 손에서 손으로)
실어나르면서 기정사실인 것처럼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거고요.
흑인에 대한 것은 기본적으로 문제제기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봅니다.
현대 헐리웃 영화에 보면 정치적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흑인 감초 캐릭터를
꼭꼭 끼워넣거나 하는데, 그것은 실제로 미국이 다민족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어딜 가나 흑인들이 섞여있는 것이 현실인 것이기 때문에, 현대 미국사회를
다루는 영화라면 영화 안에서도 적정 비율이 섞여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흑인이 없다고 해서
하등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마치 '달려라 하니'에는 왜 흑인이 안나오냐,
이진주도 인종차별주의자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생트집 잡는 거죠.
또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색감 때문에 흑인을 안 넣는다는 얘기인데...
이것 역시 그저 예술가로서의 선택일 뿐이지, 인종차별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지요.
화가가 햇살 쨍쨍한 날의 호숫가 풍경을 그리면서 검은 색은 칙칙해지니까 쓰기 싫다,
이런 정도의 선택일 뿐입니다. 현대 헐리웃 영화처럼 꼭 나와야 할 당위성이
존재한다면 얘기가 약간 달라지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니까요.
색감 설계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해서 쓰지 않겠다면 그냥 그 뿐인 거죠.
이런 걸 가지고 인종차별이라며 떠벌이는 것은,
어느 일본 유명인을 이미 인종차별주의자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서,
단지 까기 위해 거기에 끼워맞춰가며 재단하는 행태일 뿐입니다.
카더라식의 반응과 인터넷특유의 무한 복사 시스템이 만든 헤프닝이군요..
작품에서 허물없이 서로 돕고 사랑하는 이상사회를 그려온 미야자키 감독이
흑인이나 한국인 등 특정집단에 대한 차별적 가치관을 들어 그들을 배제한채
이상사회를 꿈꾼다면 이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없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한번더 생각하여 그가 작품에서 보여준 인간과 자연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사랑은
넷상을 떠노는 루머가 더이상 가십꺼리의 대상 조차 안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