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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속 5센티미터' 한국판 정발 DVD 리뷰

# DVDPRIME 리뷰용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글 | 충격(shougeki@hanmail.net)


제목과 부제

초속 5센티미터. 세 개의 단편 중 첫번째 이야기에서 일찌감치 알려주듯이, 직접적으로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를 지칭하고 있는데, 좀 더 넓게 보자면 영어 부제인 'a chain of short stories about their distance(그들의 거리에 관한 일련의 짧은 이야기들)'와 함께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본질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전작들에서부터 일관되게 이야기해 온 소재인 시간, 속도, 그리고 거리이다.

사실 본작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신카이 감독의 출세작인 단편 '별의 목소리'와 그리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라면 '별의 목소리'에서는 주인공이 머나먼 우주의 성간탐사에 참가하면서 생긴 거리로 인해 통신에 걸리는 시간 소요가 막대해지고 상대성원리에 의해 두 사람의 시간이 흐르는 속도 자체가 '물리적인 법칙'으로서 어긋나 버리게 되는데 비해, '초속 5센티미터'에서는 그런 식의 장대하면서 또한 명확한 장애 요소들을 배제했다는 점이다. SF의 틀을 벗고 현실의 일상으로 안착한 '초속 5센티미터'의 세계에는 그렇게 명확하고 극복이 불가능한 장애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계는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현실의 그저그런 거리로도 마음은 멀어져가고, 물리적으로는 균등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사람들은 어긋나는 속도의 상대성을 경험한다. 명확한 법칙은 없고 모든 것은 애매모호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현실이란 게, 인생이란 게, 마음이란 게,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SF라는 부가적인 장치를 버리고 시간과 속도, 거리에 집중함으로써 신카이 감독은 본래 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본질에 한층 더 깊숙이 다가서는 데 성공했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물리적 거리가 멀어진 두 사람의 마음이 멀어져가는 속도, 바로 곁에 있음에도 다가설 수 없는 마음의 거리, 3년을 사귀었어도 1cm 밖에는 가까워질 수 없었던 마음 등... 이 작품은 갖가지 종류의 속도와 거리를 통해 인물들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세 개의 연작 단편

이 작품은 극장용 영화이면서 세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 단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제1화 벚꽃 이야기

아버지의 직장 관계로 어려서부터 전학이 잦았던 타카키와 아카리. 비슷한 처지에 성격과 관심사까지 비슷한 두 사람은 점차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그러나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아카리는 다시 한 번 토치기로 이사를 하게 되고... 중학교에 가서도 편지를 교환하지만 이번에는 타카키가 더 먼 카고시마로 전학이 결정된다. 여차할 때 전철만으로는 만나러 갈 수 없게 되는 거리... 타카키가 이사를 가기 전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만날 약속을 한다. 중학생으로서는 처음 가보는 범위로 전철을 갈아타 가며 아카리가 기다리는 이와후네로 향하는 타카키. 하지만 갑작스레 쏟아지는 폭설로 전철은 운행지연을 거듭하고 타카키는 점점 더 초조해 지는데...

제2화 코스모나우트(러시아어로 우주비행사를 뜻한다.)

타네가시마를 배경으로 고등학생이 된 타카키를 좋아하는 소녀 스미다 카나에의 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중학교 때 전학온 타카키에게 한 눈에 반한 카나에는 타카키와 같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고, 몇 년 동안 가까이 지내고 있지만 좀처럼 타카키에게 고백을 하지 못 한다. 취미로 하고 있던 서핑도 슬럼프에 빠지자 카나에는 서핑보드에 다시 서는 날 타카키에게 고백을 하기로 결심하는데...

제3화 초속 5센티미터

회사원이 된 타카키. 다른 여성과 교제를 해보기도 하고 일에 매진해 보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타카키의 상실감은 메워지지 않고 슬픔만이 켜켜이 쌓여간다. 이젠 한계라고 생각했을 때 타카키는 회사를 그만두는데... 그러던 어느 날 오래 전 아카리와의 추억이 서린 그 건널목에서 다시금 아카리와 스쳐지나가는 타카키. 지금 뒤돌아보면 그녀도 반드시 뒤돌아볼 것이란 강한 예감을 느끼며 타카키는 뒤돌아 서는데...

일상성의 힘, 신카이 작품 특유의 매력

이 작품은 일반적인 픽션 작품들과는 다르게 가급적 드라마틱한 구성을 배제하고 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워넣는 것은 담담한 일상의 묘사인데,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어디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좋아하는 상대방의 주위를 맴돌지만 끝끝내 전하지 못하는 한 마디.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과 같은 묘사는 관객 스스로의 경험과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쉽게 작품과 공명하게 한다. 이야기의 배경과 소품의 묘사에 있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감각을 유지시키고 있는데, 대표적인 연결고리로는 제1화 벚꽃 이야기의 전철을 꼽을 수 있겠다.

전철은 신카이 감독이 전작들에서부터 애착을 갖고 즐겨 사용하는 장치인데, 지하철이 주류인 한국과 달리 지상을 달리는 전철이 주류인 일본에서는 작품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폭설이 내린다던가 등의 이유로 운행이 지연되는 경우가 의외로 잦다. 일본에서 한동안 체류한 경험이 있는 필자도 비슷한 경험들이 있는지라 이 부분에서는 한층 더 각별하게 감정이입이 되었는데, 대부분의 일본인들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폭설에, 밤 늦게까지 기다리고 있을 여자친구를 생각하면서 느끼는 초조함이라는 보편적 감성까지 더해지면 감정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제2화에서 학생들이 스쿠터를 타고 다니고 서핑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타네가시마라는 특수한 환경은 일본인들에게도 생경한 배경이었겠지만, 카나에의 안타까운 사연은 역시 너무도 보편적인 것이기에 쉽게 감정이입이라는 아군을 획득할 만 하다. 참고로 타네가시마는 이 작품의 다른 배경들과 마찬가지로 실재하는 지역인데, 실제로도 우주개발 관련 시설들이 다수 들어서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제3화 결말부의 두 사람의 관계 역시 너무도 흔해빠졌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어봤을 사회통념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한 편으로 이렇게 담담한 일상의 묘사는 그 자체로 극적인 재미가 부족하고 쉽게 지루해질 위험성을 동반하는데, 그것을 극복하게끔 하는 것은 역시 신카이 작품 특유의 매력에서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크게 두 가지로 특징지어볼 수 있겠는데, 한 가지는 모놀로그를 다용하는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의 묘사. 이는 관객의 감성을 매우 직관적으로 건드려주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역시 신카이 마코토 작품의 백미인 압도적인 화력의 풍경 작화를 들 수 있겠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풍경 자체보다도 빛의 조율이라고 할까. 실제 사진을 찍어서 한 번 옮긴 후 신카이 감독의 광원 효과를 거쳐 태어난 배경 그림들은 한 장 한 장이 한 폭의 풍경화와도 같아서, 그저 배경만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을 지경일 뿐더러, 끊임 없이 삽입되는 풍경컷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와 이야기를 표현하는 연출의 도구로서도 기능하고 있다.

감독 본인은 인터뷰에서 전작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 비해 밀도를 낮추고 디테일을 꼼꼼하게 재현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들인 노력이 적을지 어떨지는 몰라도 관객이 보기에는 전작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이번 작의 풍경들이 아름다운 것이 사실이다. 흩날리는 벚꽃 혹은 눈발, 타네가시마의 평원, 환상 속 이성(異星)의 초원에서 바라보는 지구와 막 떠오르는 태양과 휘황찬란한 은하수가 혼재하는 아찔한 새벽하늘... 인물 작화 또한 포함하여 기술적으로도 착실한 진보를 보이고 있는 신카이 작품의 진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독특한 구조 : 벚꽃의 정서

작품이 극장에 걸린 후 관객의 반응은 크게 양분되었다. 원인은 결말의 처리 때문이었는데, 일단 이야기의 향방 자체가 관객이 픽션에 기대할 법한 전개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과, 극장용 영화로서는 짧은 60분 정도의 러닝타임에 마지막 수 분을 뮤직비디오와 같은 형식으로 갑작스레 끝내버린 구성으로 인해,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보러 갔다가 크게 당혹스러워한 관객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러한 관객들의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 익숙하지 않은 것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 본인 또한 사전정보 없이 보러갔던 극장에서는 약간의 당혹감은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쳐버리는 것이 능사는 아닐 터일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당혹감만 벗어던진다면, 거기엔 꽤나 근사한 미학적 성취가 자리한다.

이 작품의 이러한 구성은, 감독 본인이 어디까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벚꽃나무의 주기와도 꼭 닮아있다. 스러져가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일본인 특유의 정서가 배어있는 것이다. 1년의 대부분을 담담하게 인내하고 성장한 벚꽃나무가 짧은 기간 화려하게 벚꽃잎을 날리며 스러져가듯, 이 작품은 마지막의 단 수 분에 걸쳐 화려하고 자잘하게 편집된 영상과 함께, 내용에 꼭 들어맞는 노래를 흘러보내며 화려하게 만개한다. 여기에는 감독의 노림수가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곡이다. 한국 관객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는 지점일 수 있겠는데, 라스트에 흐르는 주제가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는 이 작품을 위해 새로 쓰여진 곡이 아니라, 이미 발표된지 10여년이 지났고 꾸준히 사랑받아 온 인기 기성곡이라는 점. 10여년의 세월 동안 익숙해진 가사의 내용은 물론, 곡에 얽힌 개개인의 추억과 애착을 통해 실제 스크린상의 정보 이상의 감흥을 받기를 노린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그만한 축적 정보를 가지지 못한 한국의 관객들에게 이 작품의 엔딩은 충분한 감흥을 주지 못했을까? 그렇지만도 않다. 그야 물론, 빠른 편집의 화면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가사 자막을 읽고 정보를 매치시켜야 한다는 다소간의 장벽 요인은 있었지만, 이 부분을 클리어하고 충분히 가사를 음미한 관객들은 차고 넘칠 정도의 감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물론, 지난 55분여의 내러티브에 있음이다. 이를 통해 십 수년을 켜켜이 쌓아올린 타카키의 사연과 감정을 받아들였기에 비로소, 엔딩부의 뮤직비디오는 강렬하게 작품과 공명하며 폭발적인 응집력을 갖고, 강력한 감정의 분출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5분 짜리 뮤직비디오에 불과하다는 일각의 평가절하를 불식시키는 이유이며, 때문에 이 작품은 한 편의 영화로서 존재해야 할 당위성을 충분하게 지니고 있다.

작품의 라스트씬은 빠른 편집으로 상당히 많은 정보량을 담고 있으므로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담이지만 비슷한 사례로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 작품 역시 국내에서의 뒤늦은 개봉 당시, 짧은 러닝타임과 함께, 새로운 로맨스가 시작되려는 즈음에 끝나버리는 이야기 구성으로 인해 종종 안 좋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팬들은 찾아볼 수 없는데, 이 작품 역시 비슷한 수순으로 이런 관점에서의 비판은 사라져가지 않을까 싶다. 두 작품을 상징하는 주요 소재가 동일하게 벚꽃이란 점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련해서 아쉬운 점을 한 마디만 덧붙여 보자면, 너무 짧다는 생각은 지우기가 힘들다. 20분만 더 길었다면 좋았을 텐데. 대체적으로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감각으로 말해보자면 상업용 극장영화 러닝타임의 최단 데드라인은 80분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의 스탠다드인 2시간 내외의 영화와 동일한 요금을 내고 60분만에 자리를 일어나야 할 때의 당혹감은 솔직히 그다지 자주 겪고 싶지는 않은 류의 감정이다[...]

세카이계의 관점

일본에서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은 흔히 세카이계의 작품으로 분류되곤 한다. 세카이계라는 것은, 간략하게 말하자면 주인공과 그 상대방의 관계성이 사회나 국가와 같은 외부의 요소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세계규모의 위기에 직결되는 이야기의 유형을 말하며, 그러한 만큼 주로 사춘기의 소년 소녀인 주인공들의 내면 심리 묘사가 중시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에서 쉽게 이해할 법한 대표작들을 들어보자면, 이 부류의 태동을 알린 시조격이기도 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라던가, '최종병기 그녀'와 같은 작품을 꼽아보면 대충 감이 오시지 않을까 싶다. (다만 이 용어는 넷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용어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명확하게 정립된 하나의 정의는 없으며, 그 원류를 에반게리온이 아닌 일군의 어덜트게임류로 지명하는 시각이 있는 등 모호하게 쓰이는 면이 있다.)

별의 목소리

신카이 감독의 전작들인 '별의 목소리'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이러한 유형에 꽤나 잘 들어맞는 작품들이다. 특히 계속해서 잠이 든 채로 평행세계의 꿈을 꾸는 소녀라는 설정을 도입하여 직접적으로 내면세계를 묘사하기도 했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의 라스트씬에서는, 정말 말 그대로 다른 모든 요소가 배제되고 딱 히로키(나), 사유리(그녀), 탑(세계)만이 나오는 씬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신카이 감독 역시 DVD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또 다른 주인공급인) 타쿠야마저도 사라지고 히로키와 사유리, 그리고 세계를 상징하는 탑만이 남는다'는 식으로 언급하고 있는 걸로 보아, 그 자신 또한 자신의 작품을 세카이계의 작품으로 의식하고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그렇다면 '초속 5센티미터'는 어떨까? 본작에는 비록 세계규모의 위기와 같은 커다란 장애요소는 등장하지 않지만, 앞서 적었듯 본질적으로 다루고 있는 테마는 이전의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제1화 벚꽃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아카리와의 키스를 전후하여 세계의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 것 같다는 모놀로그에서는, 주인공 개인의 인식 범위를 곧 '세계'로 치환하려는 세카이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이후 타카키의 세계는 어떻게 변화해 갔을까. 점차 줄어가는 편지의 빈도와 함께 그의 세계는 차츰 활력을 잃어갔고, 아카리로부터의 편지가 끊어진 어느 날인가부터 타카키의 세계는 정지하고 말았다.

목적지의 좌표를 잃고 심연의 우주를 표류하는 고독한 코스모나우트와도 같았던 타카키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여유는 없었다. 이미 망자와도 같은 육신을 끌고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일에 매진하던 타카키는 어느 날 한계에 다다랐음을 느끼고 직장을 그만둔다. 그리고 추억의 건널목에서 스쳐지나간 그녀... 전철이 지나간 뒤 그녀는 있어야 할 자리에 서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무언가를 털어낸 타카키는 뒤돌아 미소 짓고, 비로소 정체되었던 그의 시계바늘은 다시금 돌아가기 시작한다.

간혹 마지막 타카키의 미소를 놓치고, 이 작품의 엔딩을 슬프게만 기억하는 경우가 있는데,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과거의 속박을 깨고 뒤돌아 미소 지은 그 순간, 그 순간이야말로 타카키에게 있어서는 '세계의 변혁'에 다름 아니며, 이제 타카키에게는 언젠가의 눈부셨던 날들과 같은 새로운 내일이 찾아올 것이다. 거창한 외피는 벗어던졌지만, 신카이 작품은 여전히 그리고 보다 순수한 형태로 세카이계의 본질에 맞닿아있다

DVD Quality : A/V

DVD의 화질은 현단계에서 신카이 감독 특유의 색채와 빛의 마술을 즐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애초부터 올-디지털로 작업된 작품이니만큼 매우 깔끔하게 트랜스퍼된 화면을 보여준다. 다만 본디 풀HD로 작업된 작품이고 HD예고편이 공개되기도 했었기에 원본을 온전하게 즐기고 싶다는 소리도 간간히 들려오곤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제작사인 CoMix Wave가 아직 HD-DVD, 블루레이 시장에 참가하고 있지 않으며, 본작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근시일내에 후속 매체로의 발매는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아두었으므로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는 셈이다.

음향은 신카이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워낙 담담한 데다가 이번 작품에선 SF적인 요소까지 배제된 일상 드라마가 되어버렸기에 서라운드 채널의 적극적인 활용은 많지 않고, 센터와 프론트 채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꾸준히 신카이 감독과 호흡을 맞춰온 텐몬 음악감독의 선율과, 아름다운 화면에 걸맞는 소소한 효과음들, 그리고 인물들의 담담한 독백을 음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 음향효과를 중심으로 즐길 만한 타입의 영화는 아니지만 한 가지 당부해 두자면, 라스트 파트의 뮤직비디오 씬에서는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수준에서 가능한 한 대음량을 시도해 보시기 바란다. 정신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육체적으로도 직접 가슴을 울려주는 대음량의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와 함께 할 때 이 장면의 감정적 고조는 더 할 나위 없는 체험이 된다. 아! 이건 정말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다. 마지막의 주제가 하나 때문에라도.

자막은 일본어 원어와 한국어를 지원하고 있다. 거의 반드시 영어 자막이 제공되는 미국쪽 작품들과 달리 일본쪽 타이틀들은 종종 일본어 원어 자막을 제공하지 않아 아쉬울 때가 많은데, 다행히 본 타이틀에서는 원어 자막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발매를 서두르면서, 한국어 더빙이 수록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전작이었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도 비교적 단기간에 발매되면서 한국어 더빙이 수록되지 않았었는데, 얼마 전에 우연히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가 한국어 더빙으로 방송이 되고 있는 것을 보고 아쉬워 했던 기억이 난다. 이는 불법 다운로드 범람으로 인한 시장 악화와 빠른 출시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로 인해 홀드백 기간 단축에 사활을 걸어야 하게 되었기 때문인데, 현시장상황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최종적인 제품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Special Features

스페셜피쳐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독립형 제작 작품의 특성상 일반적 기준에서 크게 풍성한 편은 아니지만, 감독과 성우들의 10분 남짓한 인터뷰 몇 개만을 수록했던 전작에 비하면 꽤나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상당히 만족스러운 편이다. 먼저 DISC1에는 두 종류의 트레일러와 감독 인터뷰, SICAF 당시의 스크리닝 토크가 수록되어 있다. 감독 인터뷰는 35분 분량으로 전작 타이틀의 10분 남짓한 인터뷰에서 부족함을 느꼈던 것에 비해, 당초 10개 정도의 짧은 단편들로 구상했던 기획이 현재의 연작 형태로 자리잡게 된 경위 등 많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그의 작품들과 꼭 닮은 부드러운 외모와 어투가 인상적.

인터뷰 중 난입한 고양이. 어쩌면 이름이 쵸비일지도?

10분 분량의 스크리닝토크는 SICAF 행사 당시에 있었던 국내 관객과의 대화 이벤트를 수록했는데, 이번 한국판만의 특별한 가치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는 그동안 신카이 감독작품의 DVD에서도 좀처럼 만나볼 수 없었던 기타 스태프들의 발언도 접할 수 있다.

SICAF에서 넘겨준 자료를 그대로 사용한 듯 별도의 subtitle을 제공하지 않고 전반부는 화면에 입혀진 붙박이 자체 자막을 통해 내용을 전달하고 후반부는 행사장 통역의 통역을 그대로 수록했는데, 생략이 너무 심하고 종종 오역도 발견된다. 이 부분은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안이하게 넘겨받은 자료를 그대로 수록할 것이 아니라 별도의 자막을 삽입했어야 할 부분이다.

DISC2에는 비디오 콘티와 주제가 뮤직비디오, YAHOO!에서 인터넷 배신되었던 선공개판의 제1화 벚꽃 이야기, 주요 캐릭터 성우 4인방의 인터뷰, 제작과정의 궤적을 담은 포토무비가 수록되었다.

먼저 비디오 콘티는 일반적으로 DVD에 수록되는 콘티영상류와는 달리, 본편의 결과물에 맞춰 지면상의 콘티를 재편집한 것이 아니라, 실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사전 제작되었던 프리-비쥬얼 영상콘티이다. 여기에는 이미 사운드와 대사까지 입혀져 있는데 최종적인 결과물과 거의 동일한 구성들을 보여준다. 현장에서의 임기응변과 촬영후의 편집이 결과물을 크게 좌우하는 실사영화와는 달리, 이 단계에서 이미 애니메이션의 기본은 모두 완성되어 있음을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타카키의 목소리를 연기하고 있는 것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본인.

성우 인터뷰는 타카키와 어린 아카리, 카나에, 어른 아카리역 4명의 인터뷰를 담고 있는데 각각 9~10분 정도의 분량이다. 아니메에 최적화된 기호적인 연기보다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중시하는 감독의 성향답게 4명 모두 전문 성우가 아닌 배우 혹은 성우이면서 배우, 모델 등을 겸업하는 인물들로 꾸려져 있다.

5분 분량의 포토무비는 배경 작업을 위해 로케 촬영했던 사진들을 비롯하여 제작과정의 면면을 담은 스틸컷이 담담한 음악과 함께 슬라이드로 진행된다.

사족 한 가지. 한정판으로 출시된 이 제품은 필름컷을 제공하고 있는데, 본편이 아닌 예고편의 필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적으로 필름컷 제공이라 했을 때에 소비자가 예상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게 극히 제한된 범위의 컷만이 제공되고 있는데, 좋고나쁨을 떠나서 스펙의 사전공지는 정확히 해야 한다고 본다.

[총평] '초속 5센티미터'는 한 편으로 동어반복이란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 깊이와 기교에 있어서 충분히 진보를 보이고 있는 수작이다.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비전형적인 구성에 난감해하셨던 분이라도 당초의 당혹감을 벗고 다시 한 번 도전해 본다면 전에 보지 못했던 장점을 찾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난감했던 형식과는 별개로 아카리와의 관계의 결말이 지닌 현실성이라는 방향 자체가 싫은 경우라면야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영화에서까지 팍팍한 현실을 맛보며 씁쓸해하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라는 것은, 그야 취향의 문제인 것이니까. 아직 미감상이신 분들 중 신카이 감독의 전작들이 마음에 드셨던 분들에게는 일단 한 번 감상해 보시라고 권해본다. 특히 SF적인 이야기보다 그 섬세한 감수성에 매료되었던 분들이라면 충분히 만족스런 감상이 될 확률이 높다 하겠다. DVD로서의 퀄리티도 조금 아쉬웠던 신카이 감독의 전작 타이틀에 비해 충실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 거의 고사 상황을 맞고 있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DVD 업계에 오랜만에 출시된 반가운 타이틀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07. 9. 14 | 충격(shougeki@hanmail.net)

※ 주의 : 본 리뷰 컨텐츠의 저작권은 'dvdprime.com'에 있습니다. 리뷰 중 모든 캡춰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소유이며, 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전재나 가공은 실정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리뷰중 '별의 목소리'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의 참조 이미지는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소유)











초속 5센티미터 (초회한정판)- 10점
신카이 마코토 감독/태원엔터테인먼트

by 충격 | 2007/09/14 19:43 | 활동화상 | 트랙백(2) | 핑백(1)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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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초속 5센티미터' 기타 잡담
'초속 5센티미터'의 구조: 벚꽃의 정서1.지방에는 개봉을 안했다는 점도 있고, 사실은 DVD나 사서 봐도충분하지 싶은 생각이었어서 굳이 극장에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그런데 극장에 가서 보게 된 이유는 칸노 요코 콘써트 때문에 어차피 서울에 가게 되었기 때문에이런 걸로라도 기회비용을 좀 더 건져보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하여간 나라는 인간은 가격대성능비와 기회비용이라는 잣대만으로대부분의 행동을 분석,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o&l......more

Linked at 임시 개장 : 초속 5센티미터.. at 2012/02/21 07:33

... Sub.asp?dvd_id=1667&master_id=0 (→ 옆에 이 블로그 맛보기 코너에도 링크 걸려 있습니다만) 블로그 전재 버전. http://shougeki.egloos.com/1473209 참고로 '초속 5센티미터'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모두 이번 블루레이판에는기존 DVD 시절의 영상특전이 완전하게 수록되지 않으므로,기존 D ... more

Commented by 도지비론 at 2007/09/14 20:02
현실성이라는 방향 자체가 싫은 사람...
제가 극장에서 보고 나왔을 때 딱 그런 느낌이었죠
작품 자체의 퀄리티에는 불만이 없었지만 그게 아숴웠달까요...
Commented by 알트아이젠 at 2007/09/14 20:03
어차피 요새 나오는 코드3 애니메이션중에서 더빙이 들어간게 별로 없더군요.(코드3 케로로에 더빙 미수록에 좌절했던 사람중 하나입니다) 어떻게보자면 헬싱OVA가 정말 대인배군요. -_-)b
Commented by 시르 at 2007/09/14 20:39
정말 잘 읽었습니다. 꼼꼼한 리뷰군요.

첨언을 드리자면 코스모나우트에서의 비현실적인 광경은

타카키의 꿈속이라고 합니다.
Commented by 스테판 at 2007/09/14 20:49
...차세대 미디어로 발매되길,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흑...
Commented by DSmk2 at 2007/09/15 01:16
작품에 대한 애정이 스며냐오는 리뷰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Commented by cirrus at 2007/09/15 07:00
일본 한정판 질렀는데 다행히 국내판은 OST라도 안들어가 있어서 안도... (...)
Commented by addict at 2007/09/15 10:50
오랜만의 DP의 외고군요. ^_^;
충격님만이 쓰실수 있는 리뷰라고 생각합니다..^_^
Commented by 엿남작 at 2007/09/15 14:37
카... DVD 안사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후우...

또 시험에 들게하시는군요 ㅎㅎ
Commented by 충격 at 2007/09/16 07:00
도지비론님/ 음 취향은 어찌할 수가 없지요
알트아이젠님/ 그 이전에 '요새 나오는' 타이틀 자체가 없잖아요... orz
시르님/ 그게 전반하고 후반에 두 번 나오는데요. 전반은 타카키의 꿈이 맞습니다만(수신자 없는 문자칠 때 보면 제목이 '오늘 아침 꿈'이고 본문에 그 광경의 묘사가 나옵니다.) 후반 쪽은 다르게 읽힐 여지가 있습니다. 전반에 보면 여자의 얼굴이 보이지가 않지요. 이건 타카키가 아카리라는 좌표를 확실하게 붙들어두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음을 나타내는데요. 로켓트 발사 장면에서 보면 카나에가 타카키가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를 직감하고 고백을 포기합니다. 이 때 카나에는 타카키 스스로의 인식 이상으로 그 존재를 확고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것에 대한 카나에의 독백이 깔리면서, 그 배경으로 후반의 이성의 풍경이 나오고 여기서는 아카리의 얼굴이 보이죠. 즉 이것은 타카키의 꿈만이 아니라 카나에의 인식을 가미한 영화적 표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환상'으로 묶은 거예요.
스테판님/ 제작사에서 확실히 밝힌 만큼...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DSmk2님/ 음... 사실 전 그렇게까지 완전히 올인 모드는 아니었던 것도[......]
마지막 한 방이 워낙 강했던 영향이 크죠. 아마 극장에서 보지 않고 집에서 처음 봤다면 지금보다 좀 덜했을 듯... 가슴을 울리는 대음량으로 체험해야 하는데... 집에서는 그 맛이 온전히 안나요 ㅠㅠ
cirrus님/ 대신 스크리닝토크가 들어간 것이 한국판의 장점이죠 :D
여유가 있으시면 추가구입도 한 번 생각해볼 만 하지 않겠습니까 ^^;;;
addict님/ 원래 지난 번에 이미 썼던 벚꽃 비유 단락 말고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요[...]
이번에 다시 보고 새삼 생각하면서 써봤습니다. (총알은 준다고 할 때 챙겨야겠기에...;;;orz)
엿남작님/ 안사려고 벼르다... 안사려고 벼르다... 뭔가 굉장히 오묘한 문장입니다. ^^;;;
Commented by 루리도 at 2007/09/29 01:20
막상 사놓고 보진 않았는데, 디스크2는 돌려보고 싶어졌네요..^^
Commented by 충격 at 2007/09/29 22:04
저도 사놓고 안보다가, 리뷰 들어오고 나서야 봤습니다[...]
Commented by 가시방석 at 2007/10/18 12:54
사람의 움직이나 감정의 표현 등의 여러요소들이 심리적인 요소들이 소설 같습니다.
처음 봤들때 왕감명, 옥션을 거쳐서 일본 DVD를 먼저 구매했다는것....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국내 판도 나온것 같군요. 구매해봐야겠습니다.
Commented by 충격 at 2007/10/18 19:54
영상과 독백으로 끌어가는 특성상, 일반적인 작품들이 소설이라면,
신카이 작품은 시에 가깝다는 평들을 듣기도 하지요.
국내판에는 일판에 없는 스크리닝 토크도 들어있으니
중복지출에도 나름이 보람이 있으실 거예요. :-)
Commented by 꺼먹둥이 at 2013/05/30 03:31
필름컷이 본편이 아니라 예고편을 소스로 삼은거군요. 허허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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