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를 오래 보신 분들이라면 대충 아시겠지만 제가 특히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불확실한 루머가 검증없이 계속해서 확산되며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되어가는 현상' 입니다.
특히 한국 웹 안에서만 돌고돌면서 그러는 경우들이 유난히 많죠.
그래서 가끔씩은 그런 걸 분쇄하는 데 목적을 두는 포스트가 이곳에 올라오기도 합니다.
서브컬쳐 계열의 이러한 루머들 중에 특히나 심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나디아입니다.
나디아에 대한 괴소문들은 그 역사가 매우 오래 되어서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PC통신 시절부터 시작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 그것이 회자되면서 깊게 뿌리를 내리다보니,
인터넷이 발달하여 일본어만 어느 정도 할 줄 안다면 쉽게 진위를 확인해볼 수 있게 된
현재에 이르러서도 아직까지 그 루머들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나디아의 루머들에 대해서 정리 포스트를 올려보려고
처음 생각했던 게 거의 3년이 다 되어가는데 (게으름;;),
그때만 해도 이런 사실들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이 아주 용이하진 않은 상태였지만
2009년 12월 현재의 상황을 보자면 wikipedia 에 기본적인 개요가 간단명료하게 정리가 되어있으므로,
어느 정도까지는 손쉽게 확인을 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그런 부분들까지 아직도 루머가 씻겨나가질 않고 있네요.
이 나디아 관련된 이야기들은 심지어 이 바닥에서 구를 만큼 구르셨고
일본어 할 줄 아신다는 거 뻔히 아는 분들까지 종종 옛날에 돌던 루머 그대로 적는 걸 자주 목격해서
당황스럽달까, 뭔가 미묘하게 참담한(...)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동안 이 문제 관련해서 여기저기(라고 해봤자 DP와 이글루스 정도지만) 에서 종종 리플을 달기도 했었는데,
어쨌든 그리하여 오늘은 그동안의 게으름을 청산하고 이 문제를 제대로 정리해서 남겨볼까 합니다.
※ 나디아의 한국식 제목은 아직까지도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로 적을까,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로 적을까 고민하게 되곤 하는데 (MBC 방영명으로 치자면 사실 그냥 '나디아'지만),
이번 포스트 제목은 구글신님의 검색결과(...)를 존중하여
건수가 더 많이 나온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로 정했습니다.
자, 그럼 일단 한국에서 거의 기정사실인 듯 퍼져있는 나디아 관련 주요 루머들을 간결하게 나열해봅시다.
- NHK에서 라퓨타가 인기있으니 라퓨타 비슷한 걸 만들라고 요구했다.
- 나디아 내용이 심각해지자 NHK에서 아동용으로 만들라고 압력을 넣었다.
- NHK와 안노 히데아키 감독간에 심각한 불화가 있었다.
- 그로 인해 안노가 잠적했다. 도망쳤다.
- 잠적이 아니라 병원에 입원했다.
- NHK와 사이가 안좋아지자 제작비도 주지 않았다.
- 땜방으로 한국외주를 통해 섬편을 급조하여 퀄리티가 폭락했다.
- 퀄리티 폭락으로 인해 방송국에 항의, 협박 전화가 쇄도했다.
- 궁지에 몰린 NHK가 안노 감독을 다시 모셔오고 제작비를 긴급지원하여 사건이 해결되었다.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보시다시피 대부분 NHK와의 불화설과 섬편에 관련된 내용들이죠.
이것들이 완전히 100% 만들어진 이야기일리는 아니겠고
찾아보면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순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굉장히 과장된 이야기들인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이제부터 몇 가지 일화들을 곁들여가며, 이 얘기들을 정정해 보기로 하죠.
※ 이하 적는 내용들은 '가이낙스 인터뷰즈'를 비롯한 각종 책자 및 인터뷰,
'BS 아니메 야화'를 비롯한 각종 방송들, 오카다 토시오의 각종 토크라이브 행사 등을 통해
관계자들이 직접 증언한 내용들입니다.
라퓨타를 베껴라!!
다들 아시다시피 나디아의 도입부는 라퓨타의 그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신비의 힘을 품고 있는 돌을 지닌 소녀가 악당들에게 쫓기고, 그것을 구해주는 소년이 있지요.
여기서 NHK가 가이낙스에게 라퓨타를 베끼라고 시켰다는 이야기가 생겨났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디아와 라퓨타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작품인 것은 맞습니다.
다만 거기에는 저렇게 표절을 하라고 시켰다는 단순한 이야기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경위가 있습니다.
때는 '미래소년 코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미래소년 코난' 역시 NHK에서 방영한 작품이었죠.
'미래소년 코난'을 마친 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새기획안을 NHK에 제출했으나 이는 채용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때의 기획을 다듬어 '천공의 성 라퓨타'로 선보이게 되죠.
한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NHK에 제출했던 기획은 그대로 남아 이후 나디아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즉, 두 작품은 본래부터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형제와도 같은 경우인 것이죠.
오히려 해저 2만리를 비롯한 쥘 베른 작품들과, 라퓨타의 초기 기획안이라는 원전을 두고 있었으면서도,
이만큼이나 자기식으로 각색해 내어 멋진 작품으로서 완성시켰다는 것에 대해,
가이낙스와 안노 히데아키를 높이 평가할 점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가이낙스 쿠데타 사건
나디아의 기획초기 당시에 대해 좀 더 얘기해보자면,
사실 나디아의 기획에 대해서는 당시 사장이었던 오카다 토시오나
현재 나디아의 감독으로서 이름을 남기고 있는 안노 히데아키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된 것인가 하면.
당시 가이낙스의 프로듀서 중 한명이었던 이노우에 히로유키가
야마가 히로유키, 안노 히데아키와 같은 천재들에게 묻혀서
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 사다모토 요시유키,
마에다 마히로 등의 새로운 재능을 중심으로 NHK와 함께 기획한 비밀 프로젝트였던 것이죠.
당초의 계획은 사다모토 요시유키에게 감독직을 맡길 예정이었습니다.
오카다 토시오는 이 사실을 NHK와 정식 미팅 며칠 전에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제의 미팅 날이 되었고...
오카다 토시오는 미팅 현장에서 기획안을 보고
"이게 뭐야? 그냥 라퓨타를 베낀 거 아닙니까?" 라고 언성을 높였다고 하죠.
NHK 측의 연세가 있던 프로듀서는 처음엔 그걸 애써 부정하며 언쟁을 하다가...
결국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다고 합니다(...) 농담이 아니라, 실화입니다.
(참고로, 오카다 토시오는 '연세도 있는데 적당히 할 걸 그랬다'고
지금은 순수하게 반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노우에 히로유키의 계획과는 달리,
줄곧 감독직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주저하고 있던
사다모토 요시유키는 결국 도저히 못하겠다며 물러나고 맙니다.
당시의 사다모토 요시유키는 '왕립우주군'처럼 (비록 빚은 불어나지만[...])
전력투구를 해야만 작품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는데,
퀄리티의 타협이 불가피한 TV시리즈를 맡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여기서 안노 히데아키가 나서서 오카다 토시오에게 말을 건네게 됩니다.
"제가 맡아줄 수도 있어요."
달리 방법이 없던 오카다 토시오는 이를 수락하게 됩니다.
이에 안노 히데아키는 "저한테 빚진 겁니다~" 하고 능글거렸다고 하죠.
오카다 토시오는 어쩔 수 없이 숙이고 들어가긴 했지만 이때 일이 아직도 분하다고 하는군요(...)
섬편, 모든 것은 시나리오대로.
한국에서는 무인도편이라고들 흔히 부르는 통칭 섬편. (혹은 '남국의 섬편')
한국에 퍼진 루머들 중 상당수는 이 섬편을 제작상의 문제로 인해 급히 만들어넣은 땜방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죠. 이 섬편은 기획 초기부터 원래 계획되어 있었고, 예정대로 제작된 것입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물적 증거를 나디아의 방영전 파일럿필름 예고편에서 찾아볼 수 있죠.
본래는 DVD-BOX 에도 특전영상으로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만,
국내에 출시된 나디아 DVD는 일본판의 특전디스크가 제외되어 있는 관계로..
국내에선 정품 구입자가 정품 구입을 해놓고도 쉽게 볼 수 없는 영상이니만큼 다이제스트로 보여드리겠습니다.

※ 파일 속성 만든 날짜를 보니 이 스샷을 편집한 날이 2007년 1월 9일입니다.
이 글을 쓰려고 한지가 정말 3년이 다 되어간다는 얘기죠. 일종의 게으름의 증거...이기도 하군요. -_-;;;
인용으로서는 다소 과다한 다이제스트란 생각이 들어서 다시 찍어서 몇장만 올릴까 하다가..
다시 만들기도 좀 그렇고, 국내에 정품 DVD 구입했지만 못보신 분들도 많으시고 하니,
눈 질끈 감고 그냥 올려봅니다. 뭐 제작사에 피해줄만한 스샷도 아니고요.
대신 해상도는 원래 1024 가로 해상도로 만들었던 것을 좀 줄여서 올립니다.
(추후 문제가 제기될 경우, 삭제되거나 교체될 수 있습니다)나디아 많이 돌려보신 분들은 딱 보면 아시겠지만 다 본편에 있는 장면들이죠.
근데 미묘하게... 라기보단 조금 많이;;; 퀄리티가 떨어집니다.
같은 씬, 같은 구도인데 작화만 떨어지죠.
'나는 도통 잘 그린 그림, 못 그린 그림, 구분을 못하겠다!!' 라시는 분이 계시더라도
그랑디스의 머리 색깔 같은 걸 보시면 본편과는 다른 그림이라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사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런 얘기들은 아니니까 넘어가기로 하고... 중요한 것 맨 위의 오른쪽 컷이죠.
본방영 때 나디아의 원전이 '해저 2만리' 만으로 표기된 것과는 달리,
그 이전에 이미 '신비의 섬'이 병기되어 있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신비의 섬'이 바로 나디아의 통칭 '섬편'의 원전인 것이죠.
'신비의 섬'의 내용을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이런 내용입니다.
(핵심 스포일러는 일부 가립니다. 보실 분들은 긁어서 보시고, 피하고 싶으신 분들은 알아서 피해가시길)
남북 전쟁 시절 남군에 포로로 붙잡혀있던 다섯 명이 탈출하면서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는데,
섬에 링컨섬이란 이름을 붙이고 그곳을 개척하며 살아가면서 뭔가 계속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되죠.
그러다가 막판에 그 이상한 일들이
사실은 노년의 네모 함장이 그들을 몰래 지켜보며
도움을 주고 있었던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는 내용으로, '해저 2만리'의 후속편격인 소설입니다.
이는 나디아에서 쟝 일행이 무인도에서 이상현상들을 계속 겪게 되는데,
그게 사실은 레드노아 때문이었다, 라는 것과 기본적으로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죠.
물론
'해저 2만리'와 관련이 있다거나, 링컨섬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그렇고요.
에어튼 같은 인물도 사실 '신비의 섬'에서 따온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에어튼의 성은 마찬가지로 쥘 베른 원작인 '그랜트 선장과 아이들'에서 따왔고,
직업은 '해저 2만리'의 주인공에게서 따왔습니다.
'해저 2만리' '신비의 섬' '그랜트 선장과 아이들' 은 완전히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3부작을 이루고 있는 작품군이죠)밑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섬편이 일종의 계획된 버림패였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획에도 없던 것을 급조해서 만들어 넣은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죠.
이 점을 우선 분명히 해두고자 합니다.
※ 참고로 제가 이 글을 처음 쓰려고 했을 때만 해도 국내에
'신비의 섬'이 정식으로 제대로 소개되어 있진 않았었는데,
그 이후에 정식 완역본으로 제대로 소개가 되었습니다.
참고 삼아 링크 걸어두지요.
나디아의 저작권다들 아시겠지만,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제작비를 펑펑 쓰기로도 유명한데요.
이것은 여지없는 사실이어서 나디아도 사실 초기에 제작비를 대부분 탕진한 관계로
빚을 져가며 어렵게 어렵게 제작을 해나가는 꼴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저작권 얘기를 하고 넘어가자면, 가이낙스에겐 나디아의 저작권이 없습니다.
하청의 하청을 받아서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죠.
나디아의 제작은 NHK와 토호이고, 애니메이션의 실 제작은 그룹 Tac에 원청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룹 Tac 에게 가이낙스가 하청을 받는 형태로 제작이 되었죠.
애초부터 제작비에 그리 여유가 없었을 것이란 점은 용이하게 짐작해볼 수 있고,
히트 후에도 가이낙스는 저작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돈을 만져볼 수가 없는 쓰디 쓴 상황을 겪게 됩니다.
이 일은 결국 교훈이 되어, 이후 가이낙스의 방침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요.
자신들의 작품의 저작권은 스스로 잘 챙겨서 꼭 쥐는 대신,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저작권 때문에 울지 않도록,
자신들에게 무언가 요청을 해올 때는 관대하게 허락하는 방침을 갖게 됩니다.
후일 에반게리온의 대히트 후 각종 미디어믹스 전개와 피규어 등의
관련상품이 유독 많은 것도 사실은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제의가 들어오든 진짜 썩어문드러지게 이상한 게 아니면
대부분 허가를 쉽게 내주는 편이기 때문인 거죠.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 아무나 다 쓰는 '사골게리온'이란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 방침을 갖고 있고,
그런 표현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근본에 있는 정신이 다르다고 보니까요.
사실 각종 미디어믹스와 상품전개가 다양할 뿐이지, 실제
에바의 본편은 그리 많은 편인 것도 아닙니다.
전26화의 TV 시리즈와 두어 편의 구극장판, 그리고 지금 전개되고 있는 중인 신극장판 시리즈가 전부죠.
일대 사회현상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치고는 비교적 얌전한 편에 속한다고 봅니다.
섬편의 버림패 제작 의도와 경위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모자라는 제작비에 힘겹게 제작을 해나가던 나디아는 인적자원의 스케쥴면에서도 문제를 겪게 됩니다.
도중에 걸프전이 터지면서 특집보도 때문에 휴방이 잦아져, 숨통이 트이곤 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균일한 고품질을 유지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안노 히데아키는 하나의 전략적 방침을 선택합니다.
나디아의 주된 인적자원과 제작비의 상당량을 최종결전 파트에 집중투입하고,
섬편에 대해서는 통째로 손을 놓아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오카다 토시오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이낙스의 비밀병기 히구치 신지인 것이죠.
(때가 때이니만큼 적어보는 사족. 에반게리온의 주인공, 이카리 신지의 이름은 그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중의시키고 있는 다른 뜻도 있습니다만 그건 다음에 쓸 에바 파 포스트에서 적기로 하고)
이야기는 '톱을 노려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실 '톱을 노려라!' 역시 원래는 안노 히데아키가 감독을 맡을 예정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또 어디의 대타 전문 강타자야!)'톱을 노려라!'는 바로 히구치 신지가 감독후보로 준비하던 프로젝트였죠.
당초 계획으로는 가이낙스 사내에서 기획만 하고,
실제작은 외주를 줘서 실속있게 이익을 챙겨 빚을 갚기 위한 목적의 프로젝트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안노 히데아키가 감독을 맡으면서 또 신나게 제작비를 펑펑 써댔습니다만[...])하지만 진행속도가 지지부진하던 차에,
짓소지 아키오 감독의 실사 특촬영화 '제도물어' 쪽에서 참가제의를 받게 되고,
가이낙스의 양해를 얻어 그쪽의 그림콘티담당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그의 콘티는 거의 채용이 되질 않았고...
할 일이 없어서 현장 나가서 특효 연기 뿌리고 뭐 그러면서 대충 지냈다고 하더군요(...)
그 밖에도 일중합작의 특촬영화에 참가했었는데,
이쪽도 진행속도가 지지부진하고 돈이 떨어져서 결국 빠지게 됩니다.
그런 한편으로 히구치 신지가 내던진 프로젝트 '톱을 노려라!'는
안노 히데아키가 감독을 맡아 멋진 작품으로 완성되었고,
다음 작품으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 들어가게 됩니다.
연이어서 별달리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작품을 완성시키지 못하는 나날을 겪고 있던 히구치 신지는,
이때 안노 히데아키 감독과 술을 마시면서
"건담의 '쿠쿠르스 도안의 섬'(※) 같은 거라도 하나 시켜주세요." 라고 했다고 합니다.
곁가지 에피소드 1화라도 좋으니 무언가를 '완성'이라는 형태로 끝을 내보고 싶었던 것이죠.
그리고 시간은 흘러... 안노 히데아키는 섬편을 버림패로 쓰기로 결정하고,
그 예정된 패전처리를 맡을 투수로 히구치 신지를 불러들입니다.
"하고 싶다면서요. 이거 해봐요" 라고 툭.
히구치 신지로서는 곁가지 에피소드 한 두편을 가볍게 맡아볼 심산이었던 것이,
23화~34화 총 12화 분량의 패전처리가 되어 돌아온 것이었죠. 수난의 시작이었습니다(...)
※ 쿠쿠르스 도안의 섬
'기동전사 건담'의 제15화로서, 유명한 번외편격 이야기.
나름 이야기의 완성도는 높다고 평가받지만, 건담 본편의 중심줄기와는 너무나도 관련이 없어서,
극장판에선 통째로 잘렸고, 미국 수출시에는 한 편이 통째로 빠지기도 했다.
작화 상태가 웃기기로 유명한 편이기도 하고, 하필 섬이란 점도 같아서,
쿠쿠르스 도안의 섬과 나디아를 거쳐 일본의 아니메 업계에서
'섬편'은 번외편을 가리키는 업계용어로 정착되었다고 한다(...)섬편의 의미이렇게 해서 나디아의 메인 스태프들이 최종결전 파트를 제작하는 동안,
히구치 신지는 한국 하청과 함께 섬편을 제작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국 하청이 나오는 건 단지 제작비 여유가 없는 패전처리였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물론 그 이유 때문에 이 부분에 집중이 된 것은 맞습니다만,
한국 하청이 참가하는 건 초기 기획 당시부터 결정되어 있던 사항이었던 것이죠.
이는 NHK 측에서 한국측과 이미 얘기가 끝나있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아니메 제작기법을 전수한다는 명목으로. 일종의 기술교류같은 것이었죠.
한국 하청의 떨어지는 작화 퀄리티와 격투하면서,
한편으로 히구치 신지는 제출되어 오는 섬편의 각본과도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초기에 제출된 각본들은 거의 'NHK의 아동 대상 아니메'에 다름아니었다고 합니다.
아니, 사실은 나디아 자체도 'NHK의 아동 대상 아니메'로서 제작된 것이긴 합니다만 ^^;
어쨌든 나디아는 완연한 'NHK의 아동 대상 아니메'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기에,
각본도 거의 자신이 직접 다시 써가며 작업했다고 하네요.
한편 안노 히데아키로서는 섬편은 이미 버림패로 결정을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저퀄리티의 작화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져서,
결국 34화에 이르러서는 자비를 털어 새로 제작을 해버렸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화는 기존 영상 소스들을 재편집해서 뮤직비디오로 구성되었죠.
(MBC 방영 당시에는 일본어 노래를 처리할 수 없어 삭제되었습니다.
이후 투니버스 방영시에는 복원되었습니다만)지금에 이르러서는
(한국에서 특히 더) 무수한 욕을 들어먹고 있는 섬편입니다만...
글쎄요, 과연 그렇게 욕을 들어먹을 정도의 에피소드들일까요?
개인적으로는 좀 의문입니다. 물론 작화가 다른 편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고,
다른 편들의 중심 스토리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제가 보기엔 충분히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답게 캐릭터가 잘 살아있었고,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당시엔 작화니 뭐니 그런 거 생각도 안하고 그냥 충분히 즐거워하며 봤었고요.
일본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니메 본연의 즐거움이 잘 살아있는
좋은 에피소드들이라고 평가하는 시각들이 양립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의 이러한 저평가에는 작화 퀄리티에 대한 과민한 반응들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는데요.
한국에서의 아니메 감상글을 보다보면 두드러지게 남발되는 것이 작붕, 작붕, 작붕 타령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히스테릭할 정도로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느끼고 있고요.
일본식 TV 애니메이션이라는 노동집약적 시스템에서
항상 높은 수준의 퀄리티를 유지하기라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편차는 감안하고 보는 것이 저는 맞다고 보고요.
심지어는 이번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 파' 감상글들을 보면서도
'일부 작붕이 거슬렸다...' 는 감상을 몇 개 목격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정말
'아연실색'(...) 이란 생각밖에 떠오르지가 않더군요.
기준선이 너무 과도하게 높게 잡혀져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섬편에 대한 이러한 반응들의 엇갈림에 대해선 접어둔다고 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이 섬편이 없었다면 35화~최종화의 슈퍼퀄리티 또한 없었을 거라는 점입니다.
히구치 신지가 묵묵히 패전처리를 수행했기에,
그 이면에서 메인 스태프들은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최종결전 파트를 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관계자들은 지금도 입을 모아, 그 덕분에 나디아를 제대로 완성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섬편은 그러니까, 말하자면 개구리가 높이 점프하기 위해 잠시 자세를 웅크리는 그런 파트였던 것이지요.
설령 섬편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시청자라도, 이런 면만큼은 합당하게 평가를 해줘야만 한다고 봅니다.
결국 NHK 불화설의 진상은?자, 그럼 이제 처음의 루머로 돌아가봅시다.
이 루머들은 대부분이 섬편의 낮은 퀄리티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실제 섬편의 제작에 관련한 진상에 대해 얘기해봤지요.
여기서 다시 처음의 루머들을 살펴보자면,
NHK와의 격한 불화가 있었다거나, 안노가 잠적했다거나,
쓰러져서 입원했다거나, 등등의 얘기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잠적은 무슨 잠적을 해요, 섬편 만들 동안 그냥 따로 뒷부분 열심히 만들고 있었을 뿐인데.
불화 때문에 제작비를 안주다가 마지막에만 긴급지원했다느니 하는 얘기는 얘기할 가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비지니스가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아는 건지...
NHK와 사이가 심하게 안좋았다는 얘기 자체도 그래요. 말은 있는데, 무슨 증거가 없습니다.
일본웹에 검색을 해봐도 뭐 제대로 걸리는 게 없어요.
물론 90년도 작품이니만큼 시대적으로 그 뒤에 인터넷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에 얘기가 적을 순 있겠습니다만...
그렇다해도 이만큼 인지도가 있는 작품에 대한 그런 류의 뒷얘기가
이렇게까지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는 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작품 성향이 그 전까지의 NHK 작품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제작과정상에 마찰이 있었을 수는 있겠고
실제로 100% 자신이 원하던대로 제작하지는 못했다든가 하는 발언을 하곤 있습니다만,
그거야 어느 현장에서도 다 어느 정도는 겪는 일이고
한국에서 말하는 것처럼 격한 갈등이 있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는 것이죠.
오카다 토시오의 말로는 오히려 당시의 NHK 담당 프로듀서는
기존의 NHK 아동 대상 아니메를 답습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성향이었다고 하고요.
나디아 이후 수 년간 망가져 있었다는 발언을 안노 히데아키 본인이 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안노 히데아키 자신의 내면적인 문제가 컸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제작 도중에 제작을 내팽개치고 도망갔다거나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라는 거죠.
일본에서도 이런 류의 소문들이 아주 없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방영 당시에나 조금 퍼지다가 금세 사그라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20년 가까이 이러고 있는 건 정상이 아니란 말이죠.
물론 관계자들한테 직접
"당시 심각한 불화가 있었습니까?" "아뇨" 라고
확인을 받은 것은 아닌만큼 제가 하는 얘기도 확실하진 않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반증으로서 기능할 만한 정황증거들이 이만큼 충분히 확인되는 데에 비해,
심각한 불화가 있었다는 증거는 이렇다할 만한 것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죠.
말하기가 껄끄러운 부분이라 언급을 자제하는 거라 생각해 볼 수도 있겠는데,
현재 정황을 봐서는 이것도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NHK의 연세 있는 프로듀서한테 이거 베낀 거 아니냐고 몰아치다가
진짜로 병원에 실려보낸 얘기까지 얘기까지 다 하고 있는데,
유독 안노 히데아키가 잠적했다? NHK랑 사이가 격하게 안좋았다?
이 얘기들만을 숨긴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시간도 충분히 흘렀고, 이 정도가 언급해선 안되는 신성불가침의 성역인 것도 아닐 겁니다.
만약 NHK와 가이낙스 혹은 안노 히데아키 간에 심각한 불화가 존재했으며
따라서 제작중에 안노 감독이 제작을 팽개치고 도망갔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부디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그런게 있다면, 검토 후 의견 수정토록 하겠습니다.
...물론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이상으로 오늘의 루머 분쇄 코너를 마치겠습니다.
이걸로 3년 묵은 체증을 좀 덜어낼 수 있게 되었네요. ㅎㅎ;;
PS: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TV판에서 할 걸 다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중에 기획된 나디아 극장판에는 애초에 참가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카다 토시오는 심지어 작년까지 나디아 극장판은 본 적조차 없다고 하더군요;;
초회시사 때에 아카이 타카미가 보러 가는 걸 말렸다고 합니다.
아카이가 말하기를 '아니메 팬들은 인생을 배우는 게 좋아' 라고 하기에,
보는 게 너무 무서워져서 이후로도 결국 안봤다고 하는군요.
당시 이벤트에서 나디아 극장판 얘기가 나오자 아직 보지도 않은 상태라며
"드디어 봐야 할 때가 온 것인가..." 라며, 다음 이벤트까지는 본다고 했었으니,
아마 지금쯤은 한 번 보긴 봤을 듯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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